해가 바뀐 첫 날이다. 새해 인사가 넘쳐 난다. 각종 경제전망이 불투명하고 국내외 정세가 어렵다고 하지만 오가는 덕담에는 축복이 가득하다. 

이웃을 향한 신세 덕담과 함께 이즈음 스스로 다짐하는 결심·결단도 빼놓을 수 없다. 다양한 목표를 정하고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소망과 함께 마음 속으로 다져보는 각오다.

살아있어 꿈을 가질 수 있고 소원을 빌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고 행복이다. 비록 얼마 지나지 않아 팍팍한 삶에 치어 성취가 어렵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새로운 소망을 품고 각오를 다지는 새 출발은 언제나 설렌다. 특히 연초인 경우는 더욱 그렇다. 많은 사람들이 새해를 이렇게 시작하는 이유다. 

공자가 말하기를 “지식으로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서 하는 것은 즐겨서 하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무슨 일이든 그 일을 대하는 태도와 자세에 따라 결과에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꿈꾸는 자는 멈추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올 한 해도 마음 속에 품은 모든 일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  

내가 가장 아끼지만 진정 버리고 싶은 것들을 버리게 해달라는 소망도 그중 하나일 수 있다. 

예부터 우리 선조들은 말 속에 어떤 신비한 힘이 배어 있다고 믿었다. ‘장래의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새해 덕담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형식도 ‘수원일보 독자여러분 올해엔 부자가 되었다지요?  복도 많이 받으신다죠’라는 표현이 맞다고 한다. 

육당 최남선은 이를 언령관념(言靈觀念)이라 풀이하며 "벌써 그렇게 되었으니 고맙다고 경하하는 것"이라 일찍이 정의했다.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지만. 다시한번 수원일보 독자여러분께 새해 첫날 솟아오르는 붉은 해의 기운이 1년내내 가득하길 소원해 본다.

덕담은 말을 할 때도 그렇지만 들을 때 더욱 기분 좋다. 상처를 치료하는 영약이 되고 사랑을 일구는 묘약이 되는 것 또한 덕담이다. 

비록 형식적이고 의례적이라 해도 정겨운 덕담 한 마디는 마음을 훈훈하게 데워준다. 

그런가 하면 어른들로부터 듣는 덕담 한 마디는 한 해 동안 가슴에 새기고 다니는 금언이었고 한 가정의 좌표가 되기도 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편을 갈라 다투고, 서로 욕을 하고 비난하면서, 끊임없이 자극하는 가정이나 사회는 결코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배려와 관용은 사라지고,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이 사라진 가정과 사회는 저급하고 상처뿐인 감정의 찌꺼기를 여과 없이 쏟아낼 뿐이다. 

이런 사회 속에선 우리의 삶의 질도 높아질 수 없다.

비록 이런 사회의 치유와 바램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새해만큼은 이런 소망의 꿈을 자유롭게 꾸고 희망을 가져보자.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든, 정치권이든, 또 다른 영역이든, 하루하루 작은 발전이 있어야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라도 가질 수 있다. 희망은 이런 환경 속에서 싹틔우고 꽃 피운다. 새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돌아와서가 아니다. 찾아온 시간에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 속에 새로운 소원을 품을 수 있어서다.

갑진년(甲辰年), 희망의 사회로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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