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 한 시인의 코너에서 또 다음 시를 읽었다. 시인이 문청시절 이래 오랜 인연에 따라 소개한, 남녘 땅끝에서 전시되고 있는 그 선배 시인의 시화(삽화/강대철), 그 도록파일의 시.  

 

그래, 가보니 어떠하냐.

가는 길이 허방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끝내 붙잡지 못한 것은

각시 붓꽃 때문이다.

때맞추어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넘쳐나는 눈부심 때문이다.

 

그래, 가는 길이 허방이면 어떠하냐,

눈부심은 눈부심만으로 눈부시다

네가 남긴 눈부심만으로 눈부시다

네가 남긴 눈부심에 싸여, 오늘은

각시 붓꽃을 바라보며 나도 눈부시다.

                                - 「각시 붓꽃」/송기원

 

 이 시에서 ‘가는 길’은 독자의 입장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재회를 바랄 수 없는 이별로도 보인다. ‘각시붓꽃’은 각시붓꽃이면서도, ‘소중하고 소중한 사람이 다른 차원으로 떠나면서 지상에 남긴 자취’를 지시하는 환유. 우리의 누구는 그간 허망의 늪에 빠트려 거의 죽게 하던 어떤 이별을 이미 한두 번 겪었고, 누구는 앞으로 겪어야 하리. 또 닥칠지 모르는 키를 넘는 그 수렁에서 질식하려는 우리를 건져 올릴, 오랜 고통과 방황 없이 형상화하기 어려운 ‘들숨’이 이 시에 있다. 

 시에서는 먼저 절망이 그려진다. 사랑하는 ‘네’가 떠나가려하자 화자는 기어코 만류하여야 했지만 그러지 못하였다. ‘가는 길이 허방인 줄 번연히 알면서도’. ‘허방’은 ‘짐승이나 사람을 빠트리려고 땅을 깊이 파고 위장한 구덩이’, 유인과 기만의 함정이다. ‘가는 길’이 ‘허방’이란 인식은 아마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사랑하는 ‘네’가 병이 깊어져 기색이 메마르자 평소 막연히 인정하던 다른 차원을 부정하며 다만 소생만을 기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도 ‘끝내 붙잡지 못’했다고 하였다. 마치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 이별을 중지할 수 있는 것처럼  진술하는데, 부정의 항변으로 보면 오히려 자연스럽고, 어떤 회오의 죄책감도 개재된 진술로도 들린다. 하지만, 이 와중에서나마 ‘각시 붓꽃’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변전한다. 

 ‘각시 붓꽃’. ‘때맞추어 여기저기 보랏빛으로 넘쳐나는 눈부심 때문’. 그러니까 그 보랏빛 꽃의 아름답고 여리고 수줍은 자태에 눈부셔서 ‘네’가 가는 마지막 국면을 마음으로 제어하지 못했다는 고백이다. 이 고백을 그 각시 붓꽃에 그만 정신이 팔렸다가 그 작별을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는 뜻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2연 3행에서 우리는 알게 된다. ‘각시 붓꽃’은 바로 ‘네’이며, 또 ‘네’가 남긴 눈부심’이다. 

 그렇다면 화자는 ‘네’가 떠나가는 순간에, 그 아름다운 모습과 남긴 자취-각시 붓꽃과 그 빛-를 찰나에 떠올리면서 이별을 인정하였다. 야생초 ‘각시 붓꽃’도 화자의 눈물 속에서 잠시 미소 어린 손 흔들었으리. 그렇다. 때가 되었는데도 계속 이별을 부정하는 건 아무래도 집착이다. 그 때가 왔을 때, 다시 말해 화자는 ‘각시 붓꽃’과 그 눈부신 광채에 의지하여 체념이 아니라 작별을 이행하였던 것이다. 

 이어서 우리가 음미해볼 국면은 2연의 1행 ‘그래, 가는 길이 허방이면 어떠하냐’는 진술이다. 1연의 1행 ‘그래, 가보니 어떠하냐.’와 유사하지만 함축된 의사는 달라 보인다. 1연에서는 그 길에 관련된 ‘허방’을 부정하고 혐오하는 취지인데, 2연에서는 복잡하지만 긍정하고 수용할 수도 있다는 취지. 문맥에 따른 이 차이에 이 시의 주제가 일순 확대되고 심화된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까 2연 1행 ‘그래, 가는 길이 허방이면 어떠하냐’에는, ‘가는 길’ 너머에 설마 허방이 도사리고 있다 하더라도 우선 상관없다는 의지가 표백되어 있어 보인다. 여기에 네가 남긴 자취가 있고, 그 모습을 기억하는 내가 있다면, ‘네’가 혹 ‘허방’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그럴 리 없겠지만, 그래도 상관없다는 크고 깊은 사랑을 우리는 읽을 수 있다. 

 이 시는 결미 ‘네가 남긴 눈부심에 싸여, 오늘은/각시 붓꽃을 바라보며 나도 눈부시다’에서 알 수 있듯, 이별 이후, 화자는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이윽고 화자는 그 빛에 동화되는 자신의 빛도 보게 된다. 화자의 이러한 각성에는 이별의 운명을 수용하면서도 그 운명에 사랑으로 저항하는 역설을 능가하는 격조가 어려 있다. 우리도 이 기회에 각시 붓꽃을 보며, 우리와 이별한 모든 사람들의 눈부셨던 모습과 자취를 한번 추억하고, 화자처럼 우리도, 떠날 그 길에 언제 오르든 우리가 남길 수 있는 각시 붓꽃이 무엇일지, 겸연쩍지만 미리 한번 생각해두면 어떨까. 그래서인가 우리는 도록파일에 수록된 시 한 편 더 읽어야 하리.

    

울음을 그친 아이가

눈물 마르는 것을

즐기네

 

지나던 바람 한 줄기

눈물 자국을 어루만지네

                      - 「잠언시편」의 한 편

 

 오랜 역경과 방황의 ‘울음’을 그치고 드디어 동심을 회복한 화자. 그 마음의 협곡에도 불듯 말듯 조용히 미풍이 간간이 오르고 내리면서 지나가고 있다. 대자대비의 바람. 두 시를 읽는 우리 대다수의 칠통같은 마음의 낭떠러지에도 그 바람이 한두 번 스치며 스며들었으면... 그래서 우리는 또 다음 시를 읽어야 하리. 

 

 몸은 마음의/그림자다//그림자만 벗기면/고통마저 눈부시니//어느 하나/버릴 것이 있으랴

                                                              - 「잠언시편」의 한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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