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과 성과의 숫자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에게 지나친 인위와 억지의 부조리까지 혼재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 모두 그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런 것들과 연관되지 않은 진공의 삶이 있기 어렵고, 우리 모두 의도하였든 하지 않았든 피해자이자 가해자일 수 있다는 의혹도 떨치기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낮의 분주한 희로(喜怒)의 검붉은 먼지를 벗어날 수 있는 잠이, 몸의 생리만이 아니라 마음의 휴식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잠에서도 다음 시에서 언급되듯, ‘어제 들은 것/여태 귀 따가운 소리’로 서성이며 설치거나 아무래도 불쾌한 관련 꿈에 시달리기도 한다. 다음 시는 그런 사람의 하나가 마침내 우선 자신에게 쓴 시이다. ‘목마른 사람 목 안에/ 물 부어 주듯’       

 

세수 아니라

세두할 수 있다면

아침에 일어나

세면대로 가서 

세수하며 눈곱 떼고

기름기 씻는 대신

머릿속 악몽 찌꺼기며 

잡념 때를 씻어낼 수 있다면

 

바깥귀뿐만 아니라

귓속 저 깊은 곳까지

씻어낼 수 있다면

어제 들은 것

여태 귀 따가운 소리 

전부 무효로 돌릴 수 있다면

 

그런데 그렇게 못할 건 뭐람

나는 오늘 세면대로 가서

승려가 세수하며 머리까지 씻듯

얼굴과 머리의 경계를 무너뜨리며

얼굴 밖을 씻은 김에

얼굴 안까지 씻어내는 기분으로

얼굴 전체를 씻어본다

물이 괸 양손을

얼굴에 좀 더 깊이 갖다 대며

차가운 물의 기운을

얼굴 저 깊은 안쪽까지

보내 본다

 

목마른 사람 목 안에 

물 부어 주듯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

조심조심

얼굴 전체를

감싸 안아 본다

 

다만 아침에 한 차례 세수하러 가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충분하다고

믿을 수 있으면

 

모든 게 충분해진 얼굴로

지금 문밖으로 걸어 나가

거울 속 나를 보듯

너를 볼 수 있다면   

                      - 「상선약수」/황유원

 

 아침에 일어난 화자는 자신의 의식에 못내 고착된 ‘머릿속 악몽 찌꺼기’도 정화하려고 발원(發願)하는 심정으로 씻고 씻는다. 세수가 아니라 세두(洗頭). 그 여운이 덕지덕지 묻어 있는 얼굴과 머리의 표면만이 아니라 그 뿌리가 도사린 머리의 그 안까지. 그래서 ‘한 방울이라도 떨어뜨릴까/조심조심’하며, ‘차가운 물의 기운을/얼굴 저 깊은 안쪽까지/보내 본다.’ 화자의 이 태도는 정성스럽다 못해 경건한 듯하고, 우리도 이 일련의 용의와 동작에 몰입하게 된다. 화자처럼 ‘그렇게 못할 건 뭐람’하면서. 그런데 화자는 그 결과를 낙관하지 않는다. ‘다만 아침에 한 차례 세수하러 가는 것만으로도/모든 게 충분하다고/믿을 수 있으면’이라 한다. 여기서 ‘충분’이란 그 정화(淨化) 상태이겠는데, ‘믿을 수 있으면’에서 알 수 있듯, 희망으로 유보하고 있는 것이다. 역시 우리는 금방 미련 없이 공감한다. 누적된 상흔과 상처는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우울증처럼 제 스스로 우리 머리 안에 고착되어 있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 얼굴의 어딘가에 씻기지 않은 표정으로 솟아서 남아 있기 쉽다. 그리하여 화자는 ‘모든 게 충분해진 얼굴로/지금 문밖으로 걸어 나가/거울 속 나를 보듯/너를 볼 수 있다면’이라고 기원하듯 거듭 희망한다. 그렇다. ‘모든 게 충분해진 얼굴로’ ‘거울 속 나를 보듯/너를 볼 수 있다면’, 이 얼마나 큰 축복이자 선행인가. ‘너’는 화자의 주변 이웃일 뿐만 아니라 화자가 ‘어제 들은 것/여태 귀 따가운 소리’를 내지른, 한편 불행하고 졸렬하기도 한 사람이며, 그들도 자신처럼 정화를 시도하여 스스로 정화를 ‘믿을 수 있으면’하고 바라는 것이 아닌가. 

 이제 이 시의 제목,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8장에서 찾아 음미해볼 때다.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 물은 만물을 잘 이롭게 하면서 다투지 않고,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닥에 머무르거나 머무르려하기에 도(道)에 가깝다.(上善若水, 水善利萬物而不爭, 處衆人之所惡, 故幾於道)". 

 형이하의 일상 세두로 형이상의 부쟁(不爭)과 정화(淨化)뿐만 아니라 이타자리(利他自利)와 겸손을 소망하는 이 조촐하고 정성스런 메시지가, 잠에서 덜 깬 아침, 독자 여러분의 그 ‘물이 괸 양손’에 어리시기를 화자와 함께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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