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9일 수원화성 성신사 고유제에 모인 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지난 3월 9일 수원화성 성신사 고유제에 모인 화성연구회 회원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해마다 봄가을(음력 1월, 7월) 첫 달 좋은 날에 수원유수가 헌관이 되어 고유제를 지내라.”

이는 정조대왕께서 내린 명령이다.

수원화성 건설 과정과 제도, 의식 등 제반 사항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한 조선왕실의궤인 ‘화성성의궤’에는 ‘병진년(1796년) 봄 특교(特敎)로 집터를 잡으라는 명령이 계셔 택일하여 사당을 지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정조대왕은 “화성의 준공을 앞두고 제일 먼저 해야 할일은 좋은 날을 가려 성신묘(城神廟)를 세우는 것”이라면서 “때에 맞춰 제사를 지냄으로써 나에게 수(壽)를 주고 복을 주며 화성이 만세토록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며 제문을 직접 짓고 향을 내렸다.

“고유제의 제품은 7가지, 폐백은 없고 축문은 있게 하라.”면서 매년 봄과 가을에 수원유수가 헌관이 되어 고유제를 지내라고 어명을 내렸다.

제수는 시과(時果)로 사과 1변(籩)과 배 1변(籩), 어해(魚醢) 조기 1두(豆)와 근저(芹菹) 미나리 1두(豆), 보도(簠稻) 쌀 1보, 궤직(簋稷) 피쌀 1궤, 시성(豕腥) 돼지고기 1조(俎), 3작(爵)을 올렸다.

초헌례를 올리는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초헌례를 올리는 최호운 화성연구회 이사장.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지난 9일 오전 11시 수원시 팔달산 중턱 성신사(城神祠)에서 고유제가 봉행됐다. 사단법인 화성연구회(이사장 최호운)가 2002년부터 매년 지내고 있지만 이날 고유제는 좀 더 의미가 깊었다.

‘수원시 전통문화 사회단체 지원사업’으로 추진된 데다 ‘화성성역의궤’, ‘한글 정리의궤’, ‘일성록’ 등의 기록을 고증하고 ‘사직서의궤’를 참고해 복원했기 때문이다.

회원들은 행사 몇 달 전부터 관련 자료를 수집하고 제수 물품을 챙기는 등 열심히 행사를 준비했다.

“우리집 제사보다 더 많은 신경을 썼다”는 한 회원의 말은 허튼 소리가 아니었다.

고유제에 참여한 모든 회원들이 힘을 썼지만 특히 강희수·윤의영·한정규·김연희 이사와 김미래 사무국장의 헌신적이고도 꼼꼼한 노력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행사였다.

나는 이번 고유제에서 아헌관을 맡았다.

이번 고유제에서 아헌관을 맡았다.(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이번 고유제에서 아헌관을 맡았다.(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초헌관은 최호운 이사장이, 종헌관은 유성재 이사가 맡았다.

이밖에 당상집례는 김용헌 이사, 당하집례는 정수자 부이사장, 알자는 윤의영 이사, 대축은 고영익 회원, 전작은 구석완 회원, 봉작은 배희남 회원, 사준은 김연희 이사, 관세는 김남옥 회원이 역할을 했다.

나는 남 앞에 나서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저 그 무리 가운데 한명으로 어울려 놀 때가 행복하다. 그래서 그동안 몇 차례의 헌관 제의도 고사했다.

그런데 이번엔 제의를 받자마자 수락했다. 어찌된 일인지 내가 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헌관 복장을 갖추어 입고 고유제를 지내는 동안 행복했다. 그렇다고 헤실헤실 웃을 수는 없는 행사라서 엄숙한 표정을 짓고는 있었지만 가슴은 뿌듯했다.

최근 한 신문의 사설에 복원 과정을 소개한 바 있다.

‘2002년 성신사 복원 중건을 위한 첫 번째 고유제를 시작으로 화성연구회는 매년 연초 ‘성신사 중건을 위한 고유제’를 지내며 중건 캠페인을 펼쳤다. 2004년 지표조사 때는 '왕(王)'자가 새겨진 기와 파편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에 수원시는 성신사를 중건 복원하기로 결정했고 기업은행도 건립기금을 쾌척했다. 성신사 중건 준공식은 2009년 10월8일에 열렸다. 이후에도 화성연구회의 고유제는 매년 계속됐다.’

이런 과정들이 고유제를 지내는 내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기억 속에서 떠올랐다.

수원화성 성신사 고유제는 수원화성이 만세토록 보존되고 수원 백성의 태평성대를 기원했던 중요한 의식이었다. 소중한 무형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다.

따라서 수원시가 이번에 ‘수원시 전통문화 사회단체 지원사업’으로 정해 지원한 것은 참 잘한 일이다.

수원시에 건의하는 바는 정조대왕의 어명처럼 봄에 이어 가을에도 고유제를 지내자는 것이다. 이와 함께 수원시의 큰 행사 때마다 이곳에서 고유의식을 거행하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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