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식으로 일러 주기에 하나하나 준비하여 나도 넝마주이 패거리의 한 사람으로 끼어들 수 있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망태 메고 집게 들고 나서서 우리들의 나와바리(구역)인 뚝섬 쪽으로 갑니다.

우리들의 나와바리는 뚝섬에서부터 광장동 워커힐까지였습니다. 뚝섬 지역에는 공장들이 많아 공장에서 버린 쓰레기에는 쇠붙이, 비닐, 종이들이 많았습니다. 종이에도 종류가 있습니다. 

가장 값 나가는 종이는 누렁이라 해서 노란색의 시멘트 포대, 밀가루 포대 등이고 신문지나 책들이 다음입니다. 그러나 광고지는 코팅이 돼 있어서 쓸모없는 종이입니다.

뚝섬에 이어 화양동 지역에는 수도여사대, 건국대학이 있어 학교에서 버리는 폐지들이 많아 우리들에게는 수지맞는 자리였고 광장동에는 장로회신학대학과 고급 아파트들이 있어 쓰레기통에서 건질 것이 적지 않았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그 시절 넝마주이로 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킨 일에 대하여 감사히 생각합니다. 넝마주이 근성(根性, 곤조)을 한번 체득하고 나면 매사에 자신감이 생깁니다.

"넘어져도 쓰레기통 옆에만 넘어져라. 넘어진 김에 쉬고서 다시 일어선다는 자신감입니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에도 쓰레기통 없는 나라는 없습니다. 그 쓰레기통을 뒤지면 인생살이를 다시 시작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실패해도, 무너졌어도 다시 재기할 수 있다는 투지와 자신감이 생깁니다.

그 시절 넝마주이 기질이 몸에 배여 지금도 어느 나라에 가도 쓰레기통을 먼저 보게 됩니다. 내가 가 본 나라들 중에서 쓰레기통이 가장 엉망인 나라는 두나라입니다.

미국과 한국입니다. 쓰레기통이 가장 깨끗한 나라는 세 나라입니다. 일본과 독일과 스위스입니다. 쓰레기통에서 아예 건질 것이 없는 나라가 있습니다. 북한입니다.

넝마주이를 시작한 이후 나는 그 동네에서 자연스레 지도력을 발휘케 되었습니다. 넝마주이 사회에서는 대장을 왕초 혹은 오야붕이라 부릅니다.

내가 그 동리에서 리더십을 발휘케 된 비결은 단순합니다. 대원들에게 자꾸 베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각자의 사정을 자세히 듣고는 적절하게 위로해 주고 충고해 주고 그들의 아쉬움을 채워 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연히 왕초가 된 나는 매일 수입의 십분의 일을 거두며 일러 주었습니다.

"교회에는 십일조란 이름의 헌금이 있다. 우리도 각자 날마다 수입에서 십일조를 모은다. 이 돈을 내가 쓰는 것이 아니고 교회에 바치는 것도 아니다. 우리 전체의 기금으로 삼아 대원들 중에 병이 들면 치료비로 쓰고 자식이 학교에 가면 등록금으로 사용한다. 특히 대원들의 가족 중에 병이 들면 이 기금에서 치료비를 지출한다. 알겠는가? 알아듣고 동의한다면 박수로 정하자."

내 말에 대원들이 설득되어 뜨거운 박수로 응답하였습니다.

때마침 대원 중 한 명의 아내가 임신 중독이 되어 몸이 붓고 다리가 퉁퉁 부어 걷기조차 불편해 한다는 말을 듣고 나는 그녀를 택시에 태워 동대문에 있는 이화여대 부속병원으로 데려 갔습니다.

진찰을 마친 후에 의사께서 임신 중독이라 일러 주었습니다.

나는 염려되어 물었습니다. "치료가 되는 병이지요? 꼭 부탁합니다. 반드시 나아야 할 사람입니다."

하였더니 의사가 "늦게 병원에 와서 어렵게 되긴 하였지만 최선을 다할테니 염려 마세요." 하고 일러 주기에 모아 놓은 기금으로 입원시켰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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