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 출신이라 그런지, 의사가 환자의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고 상태가 좋다고 하면 벌떡 일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하고 절을 하는 모습을 보면 그게 의사에게 감사할 일인가, 관리를 잘한 건 본인 아닌가, (혹은) 다른 의료진이 검사했는데 인사는 의사가 받는구나, 공연한 심술이 나고 의사는 좋겠다, 부러워하면서 교사 시절에 그런 인사를 받아봤는지 되돌아보곤 한다.

의사만도 아니다. 겨울철로 접어들었는데 수도 배관에 무슨 탈이 났는지 내내 잘 나오던 따뜻한 물이 갑자기 생각을 바꾼 듯 아무리 애를 써 봐도 헛일이면 '내가 평소 이 간단한 것에도 관심이 없었구나' 싶고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당혹감에 사로잡힌다. 그동안 일상생활이 그처럼 순조롭게 흘러온 데에 대한 무관심이 벌을 받은 것처럼 약간의 죄책감도 느끼게 된다.

귀찮고 복잡한 절차를 거쳐 세면대 설치 회사 A/S 기사가 시간을 할애해서 전용 도구와 부품을 가지고 찾아와 고장 난 부분을 귀신같이 찾아내 순식간에 수리하고 나서 “보세요, 잘 나오죠?” 시범을 보여준다. 그 다음도 일사천리다. 그가 재료비와 출장비를 청구하면 이쪽은 마술처럼 다시 온수가 쏟아지는 모습이 흡족해서 일 처리나 적정 대금에 대한 문의며 이의제기 같은 건 생각도 못한 채 요즘은 어디에든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경탄과 감사의 인사를 덧붙여 순순히 결제하게 된다.

그건 사실이다. 시야를 밖으로 돌릴 것도 없다. 집 안을 둘러보면 모든 게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 것들이다. 전기·가스·인터넷·TV는 물론이고 냉장고, 세탁기, 공기청정기, 정수기, 각종 전열 기구, 도배, 마룻바닥, 천장, 출입문 자물쇠… 어느 것 하나 내 손으로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건 없고 모두 그 분야 전문가 손을 거쳐야 하는 것들뿐이다. 그러고 보면 아예 미리 감사해야 마땅한 전문가들은 수도 없다. 왠지 걱정스럽던 일을 친절하게 처리해준 공무원, 파출소 경찰, 믿음직한 소방관, 의사와 간호사, 법무사, 변호사, 회계사, 택배 기사, 데스크의 안내원…

그럼, 교사는? 교사는 “전문직 중의 전문직”이라고 대학에서부터 충분히 듣는다. 그렇지만 우선 보수부터 전문직답게 받고 있을까? 지난 여름 어느 교사의 극단적 선택을 슬퍼할 때 알려졌었지? 5년, 10년 근무한 교사도 200만원 안팎의 봉급을 받는다는 이야기. 그 봉급을 일당으로 치면 얼마쯤 될까? 그건 그렇다 치고 지금 누가 교사에게, 교사가 하는 일에 대해 이의 없이 감사의 인사를 하나? 학생들에게 두들겨 맞고 학부모로부터 별의별 소리를 다 듣는 일은 그만두고라도 제대로 된 인사조차 못 받는 그것만으로도 쑥스럽지 않은가? 교사가 전문직이라면 왜 그런 홀대를 받아야 할까?

혹 교사는 전문직이라는 그 해석이 뭔가를 감추고 속이는 건 아닐까? 아무리 어려워도 천직으로 알고 참고 견디라는 부탁을 이념화해서 주입하고 있는 건 아닐까?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럴 것 같진 않다. 교사는 분명 전문직일 것이다. 무엇보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사람 아닌가!

초중등학교 교육과정 기준에 나오는 ‘추구하는 인간상’이라는 걸 보면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교육은 홍익인간의 이념 아래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인격을 도야하고, 자주적 생활 능력과 민주시민으로서 필요한 자질을 갖추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고, 민주 국가의 발전과 인류 공영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함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다면 교사는 이 인간상의 구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다. 여기에 지식 주입에 관한 내용은 보이지 않아서 다 공염불이므로 실제로는 교재 내용을 설명·경청하고 암기한 결과로써 시험을 잘 치게 하는 데 ‘올인’해서 나중에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런 건 학원이나 수능방송, 인공지능도 잘한다. 학교가 굳이 그것 뿐인 양 돌아가니까 교사를 경시한다.

그럼 누가 이 인간상의 실현에 노력하게 해주나?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은 나오지 않는다. 교사들 스스로 그걸 주장하면서 학생을 가르치면 남들도 교사를 전문직으로 인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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