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성한 화서공원. 2004년 서문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성됐다. 화서공원 조성으로 주변 경관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억새꽃의 멋진 경관은 수원화성의 품격을 높였다. (사진=김충영 필자)  
서문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성한 화서공원. 2004년 서문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성됐다. 화서공원 조성으로 주변 경관개선에 큰 역할을 했다. 억새꽃의 멋진 경관은 수원화성의 품격을 높였다. (사진=김충영 필자)  

올해 12월 6일은 수원화성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지 26주년이 되는 날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후 수원시는 성곽시설을 복원정비하고, 성곽주변의 불량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기에 많은 부분이 변화됐다.

단순히 성곽만을 보여주고자 함은 아니었다. 수원화성을 통해서 수원의 정체성을 높이고, 수원화성을 통해 잘사는 도시를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쉽지는 않았다. 관광의 3요소인 먹을거리, 볼거리, 살거리를 갖추는 일은 시간과 노력, 자금이 투입돼야 했다.

시작은 정조대왕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완성한 ‘무예도보통지’의 무예24기 무술 시연을 2004년부터 상설공연으로 추진했다. 상설공연 20년을 맞으면서 이제는 수원의 대표적인 공연으로 자리매김했다.

두 번째는 볼거리를 만드는 방편으로 불량지역을 정비한 후 성 밖 공원에 억새밭을 조성하는 계획이었다. 이 사업을 적극 추천한 사람은 전통문화학교 정재훈 교수(전 문화재관리국장, 전 문화재심의위원)였다.  

성곽 앞에는 나무를 심지 않았다고 한다. 성 주변에 나무가 있으면 전쟁 시에 장애물이 되어 적을 살피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신에 성곽주변에 억새를 심었다. 억새는 불화살 재료로 쓰임은 물론, 이엉을 엮는 지붕재료로 쓰였고, 봄철 새싹은 나물로도 좋은 음식재료가 돼 구황식물이 됐다. 또한 약재 효과가 많아 한약재로도 쓰였다. 정재훈 교수의 추천으로 심은 억새꽃은 수원화성의 비경중의 으뜸이 됐다. 

먹을거리는 ‘수원생태교통 2013’ 행사로 신풍, 장안동지역이 카페거리로 탈바꿈되면서 어느 정도 해소됐다. 살거리는 230년 전통의 팔달문 주변 전통시장이 있어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금 수원화성에는 억새꽃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수원화성 주변에 억새밭이 조성된 곳은 지동 시장 뒤 동남각루 밖과 동북공심돈 뒤편에서 용연으로 이어지는 연무동 지역이다. 화서문에서 팔달산 회주로까지 이어지는 구간의 억새밭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동북공심돈 뒤 연무동 억새밭. 하늘거리는 억새밭 사이로 보이는 동북공심돈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 (사진=김충영 필자)
동북공심돈 뒤 연무동 억새밭. 하늘거리는 억새밭 사이로 보이는 동북공심돈이 너무 멋있어 보인다. (사진=김충영 필자)

동북공심돈 뒤편 억새밭은 2006년에 조성했다. 연무대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창룡문 사거리까지 가서 동북공심돈 뒤편으로 돌아가면 억새밭이 보인다. 억새밭 밑에서 성벽과 동북공심돈을 바라보면 하늘거리는 억새꽃이 장관을 이룬다.

연무동 주차장 지상의 억새밭. 2017년 연무동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조성한 억새밭이다. 억새밭 가운데로 산책로가 조성돼 억새꽃 터널을 거닐 수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연무동 주차장 지상의 억새밭. 2017년 연무동에 주차장을 만들면서 조성한 억새밭이다. 억새밭 가운데로 산책로가 조성돼 억새꽃 터널을 거닐 수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용지 옆에서 바라본 각건대와 억새밭. 각건대와 억새밭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사진=김충영 필자)
용지 옆에서 바라본 각건대와 억새밭. 각건대와 억새밭이 멋진 풍광을 자아낸다. (사진=김충영 필자)

성벽을 따라 걷다가 동북암문을 지나면 2017년에 조성한 연무주차장 윗부분의 억새밭이 기다린다. 산책로 양편 억새꽃 터널을 지날 수 있어 수원화성과 어우러진 아름다움에 흠뻑 빠지게 된다. 

아름다운 용지 모습. 억새밭을 지나면 용지에 연꽃이 결구돼 멋진 풍광을 뽐내며 순례객을 맞는다. 단연 수원화성의 제1경이다. (사진=김충영 필자)
아름다운 용지 모습. 억새밭을 지나면 용지에 연꽃이 결구돼 멋진 풍광을 뽐내며 순례객을 맞는다. 단연 수원화성의 제1경이다. (사진=김충영 필자)

이어 걸으면 용연주변의 억새밭을 만난다. 요즘 억새꽃을 배경을 사진을 찍는 선남선녀들이 줄을 지어 있다. 세상에서 물리지 않는 구경거리는 첫째가 사람구경이고, 둘째가 물구경, 셋째가 불구경이라고 했던가. 이곳에서는 불구경을 뺀 가을의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용두석(龍頭石, 이무기 머리) 입에서 물을 토해내는 모습. 용연의 물 관리를 이무기에게 맡겼다. 졸지 말고 물 관리를 잘하면 승천시켜준다는 뜻이다. (사진=김충영 필자)
용두석(龍頭石, 이무기 머리) 입에서 물을 토해내는 모습. 용연의 물 관리를 이무기에게 맡겼다. 졸지 말고 물 관리를 잘하면 승천시켜준다는 뜻이다. (사진=김충영 필자)

용연을 지나면 화홍문이다. 화홍문 뒤편 석조 이무기가 입에서 물을 토해낸다. 

용연 물을 이무기 입을 통해 토해내게 한 것은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에게 꾀를 부리지 말고 물 관리를 잘하면 승천시켜주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그리고 징검다리.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바라보이는 곳에 징검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용연을 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그리고 징검다리.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바라보이는 곳에 징검다리를 놓아 운치를 더하고 있다. 여행객들이 용연을 가기 위해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이어 화홍문 뒤편의 징검다리를 건너면서 화홍문의 7간수를 만난다. 화홍문은 무지개문을 뜻하는데 무지개색이 일곱가지 색인지를 우리 조상들도 알았던 것이다.

화홍문에서 장안문 밖의 영화동  공원 구간. 성벽을 따라 가족이 함께 걷는 모습이 정겹다. (사진=김충영 필자)
화홍문에서 장안문 밖의 영화동 공원 구간. 성벽을 따라 가족이 함께 걷는 모습이 정겹다. (사진=김충영 필자)

이어 성벽을 따라 영화동지역으로 200~300m를 걸으면 장안문이 나온다.

장안문은 수원화성의 정문인데 아픔을 많이 겪었다. 1920년대 일제는 찻길을 만든다는 명분을 내세워 양편을 철거함에 따라 장안문은 섬이 됐다. 1950년 한국전쟁당시 인민군이 장안문 안으로 숨어들자 유엔군이 폭탄을 투하해 문루가 무너졌다. 

그러던 것을 1975~1979년 화성복원 때 복원했다. 1995년 민선1기 심재덕 시장은 화성을 일주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잘려진 양편에 보도육교를 만들었다. 이때 철재 다리를 놓는 것에  찬반이 많았다. 

장안문과 북서적대. 일제강점기 장안문 양편을 철거해 도로를 만들면서 장안문은 로터리 안에 갇힌 섬이 됐다. 2006년 서쪽 부분을 연결하고 동쪽은 다리 형태로 보도육교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장안문을 통해 드나들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장안문과 북서적대. 일제강점기 장안문 양편을 철거해 도로를 만들면서 장안문은 로터리 안에 갇힌 섬이 됐다. 2006년 서쪽 부분을 연결하고 동쪽은 다리 형태로 보도육교를 만들었다. 시민들이 장안문을 통해 드나들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필자가 화성사업소장으로 근무할 시기에 문화재청은 시한부로 허가를 해주었는데 철제다리를 철거하는 조건이었다. 그때 나는 이 기회에 장안문을 연결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사)화성연구회 회원, 전문가 등과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여 찾아낸 방법이 현재와 같이 서쪽부분을 연결하고 동쪽은 다리로 연결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시민들이 장안문을 통해 내왕하게 됐다.

1979년 화성복원사업 기념으로 조성한 장안공원. 조성 당시에는 도로에서 성곽을 볼 수 있도록  큰 나무를 심지 않았다. 44년이 지나면서 거목으로 성장했다. 장안공원에는 화성기적비와 화성복원정화비, 세계문화유산 등록 인증패, 역사적 세계유물 기념패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1979년 화성복원사업 기념으로 조성한 장안공원. 조성 당시에는 도로에서 성곽을 볼 수 있도록  큰 나무를 심지 않았다. 44년이 지나면서 거목으로 성장했다. 장안공원에는 화성기적비와 화성복원정화비, 세계문화유산 등록 인증패, 역사적 세계유물 기념패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장안문을 지나면 장안공원이 나온다. 이곳은 필자가 공무원 초임발령을 받고 참여해 만든 공원이다. 1979년 당시 큰 나무를 심으면 성곽을 가린다 하여 가늘고 작은 나무를 심은 것이 44년이 지난 오늘에는 거목으로 성장했다. 장안공원은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명소가 됐다.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화성시설물 중 몇 안되는 원형시설물이다. 서북공심돈은 정조의 지시로 세워졌다. 조형성이 뛰어나 수원시 마크로 사용될 정도로 화성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화성어차가 통과하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서북공심돈과 화서문. 화성시설물 중 몇 안되는 원형시설물이다. 서북공심돈은 정조의 지시로 세워졌다. 조형성이 뛰어나 수원시 마크로 사용될 정도로 화성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화성어차가 통과하고 있다. (사진=김충영 필자)

장안공원을 지나면 서북공심돈과 화서문에 이른다. 화성시설물 중 몇 안 되는 원형태의 시설물이다. 서북공심돈은 당초 설계에 없던 것을 정조의 지시로 만들었다. 정조는 자기 구상으로 만들어진 서북공심돈에 대해서 자부심이 많았다.

화서공원 표석. 이곳은 공원 명칭으로는 팔달공원의 일부이다. 장소성을 표기하는 차원에서 별칭으로 화서공원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이곳부터 팔달산으로 오르는 시작 지점이 된다. (사진=김충영 필자)
화서공원 표석. 이곳은 공원 명칭으로는 팔달공원의 일부이다. 장소성을 표기하는 차원에서 별칭으로 화서공원이라는 표석을 세웠다. 이곳부터 팔달산으로 오르는 시작 지점이 된다. (사진=김충영 필자)

이어 팔달산 방향으로 길을 건너면 화서공원이라는 표석이 보인다. 이 표석은 2004년에 세운 것인데 필자의 제안으로 세웠다. 화성 주변 공원은 장안문을 기준으로 서쪽은 팔달공원, 동쪽은 동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런데 1975~1979년 화성복원사업 때 조성한 성 밖 공원을 장안공원이라고 했다. 약속장소를 장안공원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수원화성의 억새꽃밭 중 으뜸 경관인 화서공원 서북각루 뒤편.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화성의 억새꽃밭 중 으뜸 경관인 화서공원 서북각루 뒤편. (사진=김충영 필자)

서문아파트를 철거하고 조성한 공원을 팔달공원이나 장안안공원이라고 부르기는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장소성을 나타내는 의미에서 화서공원이라는 별칭을 사용하게 됐다. 

화서공원에 오르면 성벽따라 억새밭이 이어진다. 이곳이 수원화성 억새밭의 원조 격이다. 

2007년 어느 여학생이 억새밭에서 핸드폰을 잃었는데 찾을 수 없자 억새를 태우면 잘 보이겠다는 생각으로 불을 낸 일이 있다. 이후는 상상대로이다.

깊어가는 가을, 더 늦기 전에 성 밖 억새밭을 걸어볼 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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