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축구 중계 속 오버랩 되는 한국 정치
- 목표추구와 역할 나타나는 결과는 천차만별
- 축구와 정치, 승복과 불복으로 확연히 갈려 
- ‘정치 훌리건’ 소리 듣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엊그제 저녁 갑자기 ‘정치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피식 웃음이 샜다. 특히 월드컵 중계를 보며 생뚱맞다는 생각을 하니 더욱 쓴웃음이 났다. 그러면서도 ‘축구’와 정치’가 오버랩 되어 생각난 것은 왜였을까? 아마도 ‘비슷한듯 다른’ 속성 때문이 아니었나 유추해 본다.

정치학대사전에 정의된 ‘정치’는 이렇다. '권력의 획득과 유지를 둘러싼 항쟁 및 권력을 행사하는 활동이다'. 일반적으로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을 뜻한다. 또 '정치란 사회적 가치의 권위적 분배'라고도 한다. 여기서 ‘사회적 가치’는 공익과 사익, 경제적 이익, 자유, 생존권 등 다양한 형태의 ‘이익’ 혹은 권리를 의미하는데 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 정치인이다.

잘 알다시피 정치인들은 서로 이해 관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 뭉쳐 시민 단체, 기업, 정당 등의 집단을 형성하기 마련이다. 이들은 각종 활동을 통해 이익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집단이 국회의원이다. 대표성을 인정 받기위해 국민의 선택을 받아야 한다. 서로 다른 이익과 견해를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정치공동체에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이런저런 규칙도 만들고 이를 어긴 사람들의 처벌수위도 법으로 정해놨다. 

거기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정하거나 공정한 경쟁을 위한 규칙도 만들었다. 불가피한 대결 속에서 나타나는 갈등을 조정하고 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원칙과 룰은 특정 정치 집단의 승리를 위해서가 아니고 나라의 발전과 국민 행복을 위한 것임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아무튼 서론(序論)이 좀 길었지만, ‘정치’와 ‘축구’가 다른듯 하면서도 비슷한 것이 많다. 우선 집단으로 꾸려졌으며 룰과 경쟁, 심판, 응원 등이 그렇다. 하지만 비슷한듯 하면서도 다른 것도 많다. 축구선수와 정치인들의 목표 추구와 역할의 결과가 천차만별(千差萬別)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카타르 월드컵 출전 국가대표팀의 목표는 16강 진출이다. 이를 위해 선수들은 온 몸을 던지고 있다. 그 속엔 부상 투혼도 있고 벤치의 후보 설움도 있다. 그러나 그들에겐 오직 나라를 위한 자기희생만 있을 뿐이다. 반면 작금의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은 어떤가. 국가를 대표하지만 당파와 개인의 영달에 매몰돼 대한민국은 없고 당리당략에만 몰두하고 있다. 그라운드에서 뛰는 선수들과 달리 심판의 말도 안 듣고 페어플레이 정신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렇다고 정치에 심판이 없는 것도 아니다. 국민이라는 심판이 엄연히 있다. 그런데도 축구와 달리 심판의 말을 듣지 않는다. 경고와 퇴장을 명해도 잠시 사라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스스로 빼꼼히 얼굴을 들이밀며 자주 등장한다. 심지어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뻔뻔하게 나서는 정치인도 많다. 

이런 정치인들은 음해니 공작이니 탄압이니 하는 가당치도 않은 미사여구(美辭麗句)를 동원하면서 자기 합리화도 선수급이다. 뽑아준 국민이 심판인데도 당선되면 질책을 듣기는 커녕 안하무인(眼下無人)식 행태를 저지른다. 축구에선 레드카드라도 있어 당장 퇴장을 명하지만 정치에선 그럴 수도 없다. 잘하건 못하건 임기를 보장받은 덕분(?)에 가능한 ‘배째라’식 버티기도 그래서 나온다. 축구에선 대표선발 제외는 물론 퇴출인데도 말이다. 

제기되는 각종 의혹이 사법당국의 조사로 사실로 밝혀져 가는데도 막무가내식 자가당착(自家撞着)적 주장을 일삼고 있는 정치인을 보면 더욱 기가찬다. 이런 정치인, 이런 정당을 언제까지 두고봐야 하는지 답답함을 더하게 한다. 선수 실력을 꿰뚫어 봐야하는 축구감독처럼 정치인을 보는 국민들의 혜안도 더욱 열렸으면 하는 바람을 함께 해본다. 

응원도 비슷하지만 다른 것도 마찬가지다. 정치와 축구 모두 승자와 패자가 극명하게 갈리지만, 승복여부는 사뭇 다르다. 축구와 달리 정치는 응원단의 불복도 예사여서다. 이를 등에 업은 정치인들도 다르지 않다. 현재 진행중인 국회 예산심사에서 거대 의석의 야당은 국민의 선택을 받은 현 정부의 역점 사업 예산을 줄이거나 없애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예산이 정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인데도 이를 삭감하고 자기 당 대표 공약 사업의 예산은 대폭 늘리고 있다니 이런 불복도 없다. 

경기에 나서는 축구 선구들은 상대방과 부딪칠 때가 많다. 억울할 때도 많고 화가 나기도 하지만 심판의 결정에는 이의 없이 따른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다퉜던 상대방하고 악수도 나누면서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툴툴 털고 일상으로 복귀한다. 평범하지만 정치권에 뜻하는 의미는 크다. 

특히 여·야 국회의원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대형 참사와 이런저런 사회적 혼란 속에 인정할 것은 인정하고,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사죄하며, 과거가 아닌 나라의 미래를 위한 정치에 힘써 달라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것도 이같은 연유가 아닌지 싶다. 제발 국회의원들의 오명(汚名)인 ‘정치 훌리건’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같은 여론에 귀좀 기울여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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