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도의 자세 중 ‘오룡파미세(烏龍擺尾勢)’의 모습. 찔렀던 협도를 뽑아 협도의 아랫부분 즉 준(마구리) 부분을 사선으로 걸쳐 올리듯 치는 자세에 해당한다. 마치 총검술 중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돌려치는 자세와 비슷하다.
협도의 자세 중 ‘오룡파미세(烏龍擺尾勢)’의 모습. 찔렀던 협도를 뽑아 협도의 아랫부분 즉 준(마구리) 부분을 사선으로 걸쳐 올리듯 치는 자세에 해당한다. 마치 총검술 중 소총의 개머리판으로 돌려치는 자세와 비슷하다.

- 무예 자세에 담긴 재미있는 은유법
 
 사마귀 앞발 공격!, 독수리 발톱 세우기!

 과거 중국무술 영화에서 종종 들었던 대사 중 하나다. 사마귀의 사냥 움직임을 닮았다는 당랑권(螳螂拳), 독수리가 발톱을 이용하여 먹이를 채는 동작을 본뜬 상형권인 응조권(鷹爪拳) 등은 중국무예 중 곤충과 맹조를 연상시키는 대표적인 무예다. 그런데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무예24기 자세 중에도 이런 비유와 은유를 포함한 경우가 많다.

 『무예도보통지』에 ‘협도(挾刀)’라는 무예가 있다. 협도는 마치 긴 자루에 요도를 붙여놓은 듯한 모습이다. 처음에 협도는 협도곤(夾刀棍)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되었다. 『무예제보』 간행 이후 군사 무예의 보강차원에서 1610년(광해군 2)에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이 간행되었는데, 여기에 수록되어 있다. 

 이 무예서에는 권법(拳法)과 왜검(倭劍) 등 임란 중 어왜(御倭)전법으로 훈련은 지속적으로 했지만 구체적인 보(譜)의 형태로 정리하지 못한 무예를 정리한 것이다. 거기에 추가로 기병전력이 강한 북방의 적을 막기 위한 방호(防胡) 전법의 일환으로 청룡언월도(靑龍偃月刀)와 협도곤(夾刀棍) 등 대도류(大刀類) 무기가 추가된 것이다.

 협도(挾刀)는 조선전기의 기병방어 무기인 장도(長刀)의 특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임란이후에 기병 방어용으로 정착한 협도곤(夾刀棍)과 구창(鉤槍)의 특성과 연결된다. 달려오는 적 기병의 말 다리를 베어 버리는 협도곤과 창 끝에 달린 갈고리로 말 위에 올란 탄 기병을 끌어내리는 용도였다.

 협도는 그 무예적 특징 두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협도는 협도곤과 같이 ‘일자(一刺)’라는 창의 기본 기법인 찌르기가 중심을 이루고 있다. 찌르기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창술에서 모티브를 얻어 협도의 투로가 만들어진 것이다.

 둘째, 18세기 이후 진화된 협도 투로의 의도적 정교함과 좌우대칭성이다. 특히 자루가 긴 손잡이를 이용할 경우 나타나는 독특한 특징인 ‘음양수(陰陽手)’가 규칙적이면서도 대칭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대칭적 특성은 투로의 구성시 신체활동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근대적 신체인식의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좌우 대칭적 훈련성은 개인의 몸에 대한 균형적인 발달을 위한 근대적 신체관의 정립을 통해 나타난 현상으로 조선후기 정립된 협도의 투로와 훈련방식에서 그러한 신체문화의 근대성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협도의 자세의 분석을 통해 소위 ‘근대적 몸’의 인식과 탄생을 말할 수 도 있다.

 협도의 자세 중 ‘오룡파미세(烏龍擺尾勢)’라는 자세가 있다. 그 움직임은 ‘좌휘미(左揮尾)’라고 해서, 왼편으로 물미(손잡이쪽 끝부분)를 휘둘러 적을 때려 치는 것이다. 찔렀던 협도를 뽑아 협도의 아랫부분 즉 준(마구리) 부분을 사선으로 휘둘러 치는 자세에 해당한다. 뒤쪽의 ‘단봉전시세(丹鳳展翅勢)’와 짝을 이룬다(左揮尾/右揮刃). 마치 총검술 동작에서 개머리판을 옆으로 돌려치는 모습과 유사하다. 그 자세에 등장하는 ‘오룡(烏龍)’은 개를 비유한다. 그래서 가끔 필자는 협도를 지도할 때 ‘개 꼬리치기’ 자세로 설명하기도 한다. 

 오룡(烏龍)은 중국 설화집 『수신기(搜神記)』 중 장연(張然)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충성스런 개 이름이다. 중국 진나라시대 강남 회계(會稽:절강성 소홍현 근처)지역에 살던 장연(張然)이 강제 부역에 징발당하여 한동안 집을 비웠는데, 그 사이 부인이 노비와 바람이 나서 장연이 돌아오자 불륜사실이 발각될까봐 노비가 살해 모의를 하였다. 다행히 장연이 키우던 ‘오룡(烏龍)’이라는 이름의 개가 노비가 그를 죽이려던 찰라 몸을 던져 주인을 구했다는 내용의 이야기다.

 이후 중국에서는 충성스러운 개를 ‘오룡(烏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다른 사료에서도 오룡은 충성스런 개를 상징하였다. 『본초(本草)』 「구(狗)」 조에 의하면, 세속에서 개라는 말을 ‘휘’하고 ‘용’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리고 『동국이상국전집』 제20권 잡저(雜著) 운어(韻語) 편을 보면, <반오(班獒)에게 명하는 글>에 이렇게 개를 묘사하고 있다. 

 ‘너는 털에 무늬가 있으니 반호(槃瓠-중국에 사는 남방계<南方系> 부족들의 조상에 관한 신화의 주인공으로 궁중에서 기르던 용맹한 개의 이름)의 자손인가? 너는 민첩하고 총명하니 오룡(烏龍: 『수신기(搜神記)』에 등장하는 충성스런 개 이름)의 후예인가? 발통은 방울 같고 주둥이는 칠흑 같으며, 마디 사이는 넓고 힘줄은 팽팽하다. 주인을 그리는 정성이 사랑스럽고 문을 지키는 책임이 대견스럽다. 나는 이 때문에 너의 용맹을 가상히 여기고 너의 뜻을 사랑하여 집에 두고 총애하며 기른다. 너는 비록 천한 짐승이나 북두성의 정기를 받았으니 그 영특함과 지혜로움이, 어느 동물이 너와 같겠는가? 주인이 명령할 터이니 너는 귀를 추켜들고 들어라. 절도 없이 늘 짖으면 사람들이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가리지 않고 물면 화를 입게 된다.’

 또한 당나라 중기의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는 ‘오룡이 누워 태연자약하고(烏龍卧不驚), 푸른 까마귀 차례로 날아가네 (靑烏飛相逐).’ 라며 편히 누워 쉬고있는 개의 모습을 나른한 봄날의 일상으로 묘사했다.

 -월도의 달밤에 매미 베기

 협도와 쌍벽을 이루는 무예가 있으니, 월도가 그것이다. 월도는 칼날의 모양이 초승달을 닮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도가 조선군에서 처음으로 수련된 것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명군에 의해 보급되면서 부터였다. 이후 광해군 때 『무예제보번역속집(武藝諸譜飜譯續集)』에 수록되면서 공식적으로 군영에 보급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첫 관찬 사료에서 월도를 살펴보면, 인조 5년(1627)에 훈련도감의 교사(敎師) 6명을 어영청으로 이속(移屬)시켜 무예를 훈련시키겠다는 계문(啓文)에서 보인다. 당시 어영청에서는 새로운 무예를 가르칠만한 인재들이 없어서 부득이 훈련도감에서 교사를 데려와 어영청 군사들을 훈련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보인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어영청이 아뢰기를, "이달 25일에 제조 이서(李曙)가 야대(夜對)할 때에 어영군(御營軍) 가운데 장사(壯士)를 선발하여 혹 철추(鐵椎), 언월도(偃月刀), 편곤(鞭棍) 등 짧은 병기의 기예를 교련시키도록 직접 전교를 받들었습니다. 물러나 대장 김자점(金自點)과 서로 의논하여 막 선발하여 교습하려고 하는데 언월과 편곤 등의 기예는 반드시 교사가 있어야 가르칠 수 있습니다. 훈련도감의 재주가 능한 교사 6명을 생기(省記)에서 제외시켜 이속시킨 뒤에 군병들이 파하고 돌아갈 때까지 한정하여 서로 번갈아 훈련시키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처럼 다른 군영에 사범으로 파견될 정도로 조선후기에는 훈련도감 군사들의 무예실력이 가장 뛰어났다.

 그 월도의 자세 중 ‘월야참선세(月夜斬蟬勢)’가 있다. 그대로 해석해 보면, ‘달밤에 매미를 베는 자세’다. 그런데 이 자세의 설명을 ‘오른손과 왼다리로 두 번 두드린다(以右手左脚 再叩)’라고 하였다. 월도로 두 번 두드린다는 것은 두 번을 연속을 내려치는 움직임을 말한다.

 여기서 매미(蟬:선)는 재생 혹은 불멸을 상징한다. 월도로 재생(再生)을 상징하는 곤충인 매미를 두 번 연속으로 두드려 치는(再叩:재구) 것이다. 편곤에서도 동일한 자세가 있으며, 역시 두 번 치거나 두드리는(再叩) 형태의 움직임이다. 

 매미는 애벌레인 굼벵이가 땅속에서 올라와 허물을 벗고 날개를 펼치며 성충이 되는 모습 때문에 불교에서는 ‘해탈’의 상징으로 주로 활용되었고, 도교에서는 껍질을 벗고 완전히 다른 새로운 몸을 얻기 때문에 ‘재생’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유교에서도 매미를 덕 많은 곤충이나 청렴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여겼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 매미는 부활과 재생의 의미로 인지되었는데, 대표적으로 옥으로 매미모양을 만든 장식품인 옥선(玉蟬)을 즐겨 사용했다. 일반적으로 모자에 다는 형태는 관선(冠蟬), 옷에 걸거나 몸에 붙이고 다는 것을 패선(佩蟬), 망자 즉 죽은 사람의 입 속에 부활을 의미하며 넣어 주는 것을 함선(含蟬)이라고 하였다. 이 옥선들은 모두 재생과 영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렇듯 재생되는 매미를 또 다시 공격하는 것을 자세이름에 비유적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 당시의 문화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무예 자세의 원형적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이외에도 왜검에는 산 속에서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신속하게 공격하라는 ‘산시우(山時雨)’나 별똥별처럼 빠르게 사선으로 칼을 내려 긋는 ‘유성출(流星出) 좌일타(左一打)’ 등의 자세가 있다. 

 이처럼 무예의 자세에도 시(詩)에서 사용하는 은유와 비유를 엿볼 수 있다. 어찌보면, 우리네 인생도 한 편의 시와 같지 아니한가. 오늘 하루, 시처럼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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