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수원의 남은 땅은 귀하게 쓰여야 한다

수원시도시개발현황도. (자료=수원시)
수원시도시개발현황도. (자료=수원시)

1904년 12월 27일 건설된 경부선 철도는 수원을 둘로 나눴다. 서수원은 중심시가지와 분리되면서 불편을 격어야 했다. 여기에 1938년 수원비행장이 들어서면서 비행소음은 물론 비행안전구역에 들어가게 됨에 따라 건축행위가 규제돼 발전을 가로막았다. 서수원은 동쪽의 도심에 비해 제약이 많았다. 

필자는 1980년대 서수원지역 오목천동에서 10여년을 살았다. 당시 서수원 주민들은 동수원에 버금가는 발전을 갈망했다. 지역의 일꾼이 되겠다고 입후보한 선출직들은 호기롭게 많은 공약을 내걸었다. 그러나 까다로운 지역여건으로 공약을 이행하지 못하게 됐고 시의원, 도의원, 국회의원은 대부분 단명했다.

1947년 서수원항공사진. 경부철도와 수인철도, 선경직물, 조선농기구공장, 농촌진흥청, 서울농대가 보이고 대부분 농경지의 모습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1947년 서수원항공사진. 경부철도와 수인철도, 선경직물, 조선농기구공장, 농촌진흥청, 서울농대가 보이고 대부분 농경지의 모습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서수원 지역에서 제일 먼저 자리를 잡은 것은 구한말 1906년 문을 연 권업모범장(농촌진흥청의 옛 이름)과 1907년 농림학교(서울농대의 옛 이름)다. 선경직물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설립됐으나 일제의 패망으로 국가에 귀속된 것을 최종현이 불하받아 1953에 선경직물을 창업했다. 그리고 1940년에 설립된 조선농기기구공장 정도가 있었다. 

이후 1970년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건축 수요에 맞춰 적벽돌을 생산하기 위해 동보연와와 영신연와가 설립됐다. 이후 현대가에서 1969년 수원역 뒤편에 ‘금강스레트’ 공장을 건립한 것이 서수원 산업시설의 모두였다. 서수원은 지리적 입지의 문제로 1980년대까지 큰 변화는 없었다.

1985년 서수원 항공사진. 성균관대학, 금강스레트가 들어섰고, 구운택지구와 천천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1985년 서수원 항공사진. 성균관대학, 금강스레트가 들어섰고, 구운택지구와 천천아파트단지 공사가 한창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1967년 삼성 이병철 회장은 삼성전자를 건립하기 위해 수원시 천천동에 30만평의 부지를 매입했다. 이후 공장부지로 부적합 결론이 내려지자 매탄동지역에 공장용지를 매입해 삼성전자를 설립했다. 그러자 천천동 토지의 활용도를 찾은 것이 성균관대학을 이전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1979년 성균관대학교 자연계열 캠퍼스가 문을 열었다.

1980년 택지개발촉진법의 제정으로 한국토지공사는 수원시 최초로 53만1459㎡(16만766평)을 1981년 6월 11일 ‘구운택지개발사업’ 지구를 지정지정해 1987년 12월 21일 준공했다. 이는 서수원지역의 최초의 개발사업이었다. 이로 인하여 서수원지역에도 강남아파트, 선경아파트, 동남아파트 등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섰다.

그리고 대한주택공사는 천천동에 천천주공 아파트단지를 건설했다. 천천주공아파트 단지는 이후 재건축이 추진돼 현재는 ‘화서역 푸르지오더에듀포레아아파트’ 단지가 됐다.

서수원 지역은 2차례에 걸쳐 행정구역 확장이 추진됐다. 첫 번째는 1987년 1월 1일 화성군 매송면 금곡동과 호매실동이 수원시에 편입됐다. 두 번째는 1994년 12월 26일 화성군 반월면 입북동과 당수동이 수원시에 편입됐다. 당시 금곡, 호매실, 입북, 당수동은 집단부락을 제외하고 모두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 있어 개발이 불가능한 지역이었다.  

서부우회도로의 건설은 1976년 2월 6일 ‘성균관대학교’가 수원으로 이전이 결정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서부우회도로는 도시계획만 결정된 상태였다. 학교를 건립하기 위해서는 진입도로가 있어야 했으므로 구운사거리에서 학교 정문까지 20m폭으로 1km 가량의 서부우회도로를 건설했다.

2000년 서수원 항공사진. 구운지구, 천천아파트가 들어섰고, 서부우회도로와 봉담과천 고속도로 완성과 일월, 탑동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완료된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2000년 서수원 항공사진. 구운지구, 천천아파트가 들어섰고, 서부우회도로와 봉담과천 고속도로 완성과 일월, 탑동 토지구획정리 사업이 완료된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서부우회도로를 본격적으로 건설한 것은 1989년 4월 22일 천천지구 택지개발사업을 추진하면서 단지에 포함된 서부우회도로 360m를 건설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수원시는 1991년 지지대고개에서 고색동까지 8.25km 구간에 대한 서부우회도로 건설계획을 추진해 1998년 10월 고색동 사거리 구간을 완성했다. 이 시기 ‘봉담~과천간 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서수원의 교통여건이 크게 개선됐다.

서수원지역은 제약조건이 많아 본격적인 도시개발은 이뤄지지 않았다. 1990년대 노태우 정부의 ‘주택200만호 건설사업’으로 서수원 지역에서도 택지개발사업이 시작됐다. 처음 사업이 추진된 곳은 ‘정자2지구 택지개발사업’을 ‘한국토지개발공사’가 추진하면서다. 1994년 3월 10일 37만1906㎡(11만2501평)을 지구 지정해 1999년 6월 30일 준공됐다. 

이어 수원시는 ‘일월토지구획정리사업’을 1995년 6월 5일 42만5683㎡(12만8768평)를 지구 지정해 2001년 12월 31일 완공했다. ‘탑동토지구획정리지구’ 또한 1995년 6월 5일 50만3219㎡(15만2223평)를 지구지정해 2003년 11월 15일 준공했다.

서부지역에 수원산업단지가 조성된 것은 2003년 2월로 제1단지 조성사업이 시작됐다. (‘김충영 수원현미경 38회 장안구청사에 얽힌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밝힌 바 있다.) 1975년 수원에서 문을 연 한일합섬이 1990년대 섬유산업의 사양길로 공장시설을 외국으로 이전하고 공장부지에 아파트를 건설하고자 했다.

2012년 서수원 항공사진. 호매실지구 택지조성이 한창진행중이다. 1차, 2차 고색산업단지사 완공되고 3차단지가 한창공사중인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2012년 서수원 항공사진. 호매실지구 택지조성이 한창진행중이다. 1차, 2차 고색산업단지사 완공되고 3차단지가 한창공사중인 모습이 보인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수원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제한정비권역에 포함돼 공업지역의 증설이 불가능했다. 그리하여 한일합섬부지를 주거지역으로 변경하는 대신 고색동지역에 공업지역을 재배치하는 방침을 정했다. 수원시는 한일합섬에 아파트를 짓게 해주는 대신 당시 현안 사항인 장안구청사 부지 1만평을 기부채납 받는 조건으로 추진했다. 2003년 2월 공업지역을 지정하고 공단조성 사업을 추진해 2006년 7월 1단지 조성사업을 완료했다.

2단지, 3단지는 선경직물의 공장 폐쇄와 ‘금강스레트’의 공장 폐쇄에 맞춰 추진됐다. 그리하여 고색동 수원산업단지 조성은 2003년 2월에 시작, 2016년 6월까지 125만7511㎡(38만395평)의 농지가 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수원시는 1988년 7월 1일 구청시대를 맞이했다. 수원시청은 오랫동안 교동에 위치했는데 청사가 협소해 동수원개발사업으로 확보된 인계동에 청사를 건립, 1987년 1월 22일 새청사로 이전하고 구청사는 농촌지도소가 잠시 사용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88년 7월 1일 구청제도가 도입되자 ‘장안구청사’와 ‘권선구청사’를 마련해야 했다. 장안구청사는 야구장 1층 라커룸을 개조해 개청했다. 권선구청사는 구 ‘수원시청사’를  사용하게 됐다. 이후 수원시의 인구증가로 ‘팔달구청’과 ‘영통구청’이 개청하게 됐고 권선구청사가 위치한 교동이 팔달구로 편제됨에 따라 구청을 불가피하게 이전해야 했다. (권선구청사 이전에 관한 이야기는 ‘김충영 수원현미경 39회 권선구청사에 얽힌 이야기’에서 상세하게 밝힌 바 있다.)

2006년 서수원 항공 사진. 권선행정타운이 조성중에 있고, 권선구청은 이미 입주한 상태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2006년 서수원 항공 사진. 권선행정타운이 조성중에 있고, 권선구청은 이미 입주한 상태이다. (사진=수원시항공사진서비스)

그리하여 수원시는 권선구 탑동에 권선행정타운 조성계획을 수립, 2010년 1월에 시작해 2016년 12월에 33만5620㎡(10만1524평)을 조성했다. 권선구청사는 2005년 9월 13일 착공, 2006년 3월 28일 입주했다. 권선행정타운에는 권선보건소와 서부경찰서 등 7개 기관도 입주했다.

서수원 금곡, 호매실, 입북, 당수동이 그린벨트라서 개발이 어려웠던 서부지역은 2005년 12월 26일 김대중 대통령의 그린벨트 해제 선거공약으로 지방도시는 전면 해제했으나 수도권은 일부지역만 해제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수원호매실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이 추진됐다. (이 내용 역시 ‘김충영 수원현미경 90회 수원의 그린벨트는 50년을 맞았다’에서 상세하게 기록한 바 있다.)  

수원호매실공공주택지구 사업 토지이용계획도. (자료=수원시)
수원호매실공공주택지구 사업 토지이용계획도. (자료=수원시)
수원당수 1,2지구 공공주택조성사업 위치도. (자료=수원시)
수원당수 1,2지구 공공주택조성사업 위치도. (자료=수원시)

서수원의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은 2006년 1월 6일부터 시행된 ‘수원호매실 공공주택지구 조성사업’에 이어 2016년 8월부터 시행된 ‘수원당수 공공주택지구조성사업’과 2020년부터 시행중인 ‘수원당수2공공주택지구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수원은 3개 사업 476만9648㎡(144만2812평)의 그린벨트가 해제돼 전체 3만3349세대 8만6544명이 거주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서수원은 구운택지개발사업을 시작으로 12개의 개발사업 중 10개 사업 771만151㎡(233만2310평)이 완료됐고 2개 사업 113만9205㎡(34만4608평)가 진행중에 있다.

(자료=수원시)
(자료=수원시)

그리고 서수원은 1906년에 문을 연 농촌진흥청(구 권업모범장)이 전북 완주로 이전함에 따라 종전 토지에 대한 개발계획이 수립돼 현재 한창 추진 중에 있다.           

또한 수원비행장에 대한 이전계획이 추진 중에 있다. 수원은 정조시대 농업관련 유적인 축만제와 서둔, 구한말에 설립된 농촌진흥청(구 권업모범장)이 있다. 또한 서울농대 부지와 수목원 등이 많이 남아 있다. 철저한 고증으로 농업유적을 잘 보존해야겠다.         
          
수원은 행정구역이 협소하고 도시화가 일찍 시작돼 잔여지가 없는 도시가 됐다. 수원시는 마지막 남은 서수원을 백년대계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하겠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