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일어난 서울 용산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하인리히 법칙’이 새삼 주목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또 한편에선 이번 사고가 충격과 비통함은 감출 수 없지만, 그런 곳에 간 사람들 특히 핼러윈까지 축제로 즐기려는 사람들로부터 비롯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내놓고 있다. 

먼저 하인리히 법칙은 잘 알져 있다시피 큰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반드시 유사한 작은 사고와 사전 징후가 선행한다는 경험적인 법칙이다. 1931년 미국 보험회사에서 근무하던 하인리히는 수많은 산업재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의미있는 통계학적 규칙을 찾아냈다. 

평균적으로 한 건의 큰 사고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발생하고 300번의 잠재적 징후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이에 따라 하인리히 법칙을 흔히 ‘1대 29대 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그러면서 하인리히는 대형사고 발생까지 여러 단계의 사건이 도미노처럼 순차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앞선 단계에서 적절히 대처하면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침몰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생명을 앗아간 대형사고가 적지 않았다. 업무태만, 안전교육 및 훈련 미비, 정비 불량 등 사소해 보이는 전조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이 있었다면 어떠했을까를 가정해 보았을 때 피부에 와 닿는 법칙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하인리히 법칙’이 새삼 주목받는 이유다. 

실제로 이번 참사가 일어난 이태원은 10만명이상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됐던 곳이다. 특히 사고가 난 지역은 클럽과 외국 음식점이 몰려있는 중심가로서 도로가 작고 협소하면서 경사마저 심했다. 핼러윈을 맞아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경우 통행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등 일찍부터 사고의 개연성이 감지됐던 곳이다. 참사 전날 사안은 미미했지만 비슷한 사고가 발생했던 것으로 알려진 곳이다. 

경찰과 관계기관에서 사고예방에 조금 더 신경을 썼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며 아울러 국가의 책임론을 제기 시키기에 충분하다. 어떤 상황에서든 문제되는 현상이나 오류를 초기에 신속히 발견해 대처해야 하는 것이 나라가 할 일이라 생각해서다. '예측할 수 없는 재앙은 없다'는 재난 경구(敬句)를 음미해도 그렇다.

반면 참사의 원인을 이태원 참가자들에게 돌리는 네티즌들도 있다.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빨리빨리 조급증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곳에서 핼러윈 축제를 즐기지 않았다면‘ 등등의 가정법으로 화(禍)를 자초한 참사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가당착(自家撞着)‘적 발상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상황 속에서 혹여 참담해 하는 국민을 더욱 비통하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참사를 빌미로 책임공방을 따지며 정치권이 정쟁에 들어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참사 초기 여·야가 국회의원들의 입단속을 시키는등 불필요한 오해 근절에 나서고 있어 다행이지만 벌써 민주연구원 부원장이 ‘이태원 압사 참사’ 원인이 청와대 이전 때문이라는 내용의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급하게 내린 터라 걱정이 더 앞선다.  

참담한 상황은 뒷전이고 정쟁이 우선인 나라는 후진국이나 다름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태원 참사로 인해 안전 후진국으로 전락한 마당에 정치마저 여기에 함몰된다면 국민이 겪는 자괴감은 이만저만이 아닐 듯싶다.

이태원 참사는 대부분 10대와 20대 꽃다운 청춘들이 스러져간 참사로 ‘국민소득만 높으면 뭐하나’하는 기성세대 자책감이 더욱 높아졌다. 삶의 질이 담보되지 않는 부(富)는 신기루나 마찬가지다. 이번 참사는 핼러윈에 모인 그들 탓도 있지만 평소 안전에 불감했던 우리 모두의 탓도 있다. 

그리고 나아가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지 못한 우리 사회의 잘못도 매우 크다. 지금은 이러한 자책과 함께 모두가 차분한 가운데 힘을 보태야 할 시점이다. 그래야 충격과 황망함을 넘어 국민이 더 안전한 나라를 만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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