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교육부는 역사적인 선언을 했다. “교육과정 최종 결정권은 교과서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학교와 교사들이 최종 결정한다!”(제6차 교육과정)

교사들에겐 교육과정 같은 건 안중에도 없던 시절이었다.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담긴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면 하등 문제가 없었다. 수업을 공개한 뒤 교장·교감이나 장학사가 생경한 책자를 펴들고 “이 수업을 교육과정에 비추어보았더니 어쩌고저쩌고…” 하면 ‘높은 분들은 저런 문서를 보는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교육부에서는 교사들이 궁금해 하지도 않는 일들을 행정력을 총동원해서 설명하고 설득했다. “이제 교육과정 결정권을 교육부와 교육청, 학교가 분담하게 되었다” “교육부는 기준을 개정하고, 교육청은 지역 지침을 만들어 시행하고 학교는 최종적으로 그 학교만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실천하게 되었다”

각 교육청과 전국의 학교가 우왕좌왕이었다. 어떤 학교는 마지못해 종전의 ‘학교경영계획’에 교육과정을 포함하는 시늉만 했고, 어떤 학교는 ‘학교경영계획’과 ‘학교 교육과정’ 두 가지 문서를 작성해놓고 상대방의 눈치(성향)를 봐가며 두 가지 중 한 가지를 보여주었고, 용감한(!) 학교는 ‘학교 교육과정’만 작성했다.

변화·혁신은 난데없다는 느낌일 때가 있다. 교육부가 그렇게 새 교육과정의 적용을 준비하는 동안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위원회’가 나서더니 지금까지는 공급자 중심 교육이었으므로 수요자(학생) 중심 교육과정으로 바꾸라고 했다. 요청은 명확하고 당연한 것이어서 수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로 탄생한 것이 제7차 교육과정이었다(1997년).

이 교육과정은, 한 방송사의 토론에서 찬성과 반대가 22:78이었고 스스로 그 교육과정 개정에 참여해놓고도 폐기해버려야 한다고 딴소리를 하는 학자가 있을 정도로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한국의 교육과정 행정과 교사들의 의식에 일대 전환을 가져왔고 이로써 교육은 학생의 입장을 존중해야 한다는 인식을 일거에 확보하게 되었다.

개혁·혁신의 기치를 내건 그간의 기구들이 이만한 성과를 낸 적이 있었을까? 아마도 유례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다. 왜 그럴까? 이른바 교육의 하드웨어 개선에 그 힘을 집중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장한다. “교육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는 똑같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결코 교육의 수준을 높여주지 않았다. 그 논리는 일의 성과를 물량으로 보여주는 데는 효과적일지 모르지만, 교육 개선을 위한 직접적·효율적 투자인지는 언제나 의심스럽다. 두말할 것 없이 교육은 언제나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하고 하드웨어는 소프트웨어의 결정에 종속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육의 가장 큰 병폐는 교과서 중심의 광범위한 지식 주입에 있다. 교육계 원로들은 그 병폐를 너나없이 잘 파악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지적해왔다. 다만 고위직의 자리에 앉기만 하면 까맣게 잊고 지냈을 뿐이다. 더 논의할 것도 없다. 교과서 내용 전달에 무슨 교육학이 필요하고, 교과서에 적힌 대로만 전달하는 행위를 어떻게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정책이 사회적 합의에 기반하여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추진되도록 함으로써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및 정치적 중립성을 확보하고 교육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가령 우리의 수능시험은 세계적인 화제(토픽)가 되고 있다. 그렇긴 하지만 바로잡기가 어렵다. 교육이 바로잡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을 바꾸게 해주면 된다. 다시 말하면 교과서가 아니라 교육과정과 대입전형을 일치시켜야 한다. 공연히 무슨 선거 치르듯 여론을 조사해서 “정시(혹은 수시)를 더 선호하네!” 하는 건 안일하고 한심한 대처에 지나지 않는다. 그게 무슨 사회적 합의인지, 우리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교육위원회가 겨우 그런 일이나 할 수는 없다. 교육부에서 보기에 ‘저런 건 우리도 하겠는데…’ 해서는 안 된다. 교육적 의견을 전문적으로 듣고 해석해서 전문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그래야 모처럼 국가교육위원회를 만든 취지가 살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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