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 에 등장하는 진왕마기세(秦王磨旗勢)의 그림이다. 마치 단 한순간을 포착해 그림으로 담고 있기에 그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전통시대 군사 신호의 움직임까지도 세세하게 공부해야 좀 더 올바른 복원이 가능하다.
『무예도보통지』 에 등장하는 진왕마기세(秦王磨旗勢)의 그림이다. 마치 단 한순간을 포착해 그림으로 담고 있기에 그 움직임을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다. 전통시대 군사 신호의 움직임까지도 세세하게 공부해야 좀 더 올바른 복원이 가능하다.

- 깃발에 담긴 철학과 상징의 체계

“나아가세 독립군아 어서 나가세   기다리던 독립전쟁 돌아 왔다네
 이때를 기다리고 10년 동안에    갈았던 날랜 칼을 시험할 날이
 나아가세 대한민국 독립군사야   자유 독립 광복할 날 오늘이로다
 정의의 태극깃발 날리는 곳에    적의 군세(軍勢) 낙엽같이 쓰러지리라”

엄혹한 일제강점기 시절, 조국의 해방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군이 불렀던 <독립군가>의 한 대목이다. 그들에게 태극 깃발은 꿈과 희망이자 충만한 사기를 응축한 결정체였다. ‘태극기’가 조국의 산하에 자유롭게 펄럭이는 날, 그날이 해방의 날이었다. 

『무예도보통지』 의 무예24기 중 기창(旗槍)이라는 무예가 있다. 짧은 창에 깃발을 달아 적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한 것이다. 그런데 군사신호체계에서 깃발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저 바람결에 휘날리는 멋진 모습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군사명령체계의 핵심이 들어 있는 것이다.

가장 일반적으로 전통시대에 동서남북과 중앙을 상징하는 색이 있다.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남주작(南朱雀), 북현무(北玄武)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노란색 혹은 황금색은 중앙을 상징한다. 이런 기본 상징 색깔을 바탕으로 군사부대의 구분이 이뤄진다. 예를 들면, 선봉 공격부대는 붉은 깃발, 방어하는 부대는 검은 깃발, 좌우의 날개 부대는 흰색과 푸른색의 깃발로 구분했다. 

조선 초기의 병법서인 『계축진설(癸丑陣說)』에 각각의 부대를 깃발로 나누는 방법이 있다. ‘무릇 적군에 응전할 때에는 대(隊)마다 기를 달리 하는데, 기사대(騎射隊)는 푸른 기를 잡고, 기창대(騎槍隊)는 검은 기를 잡고, 화통(火㷁) 궁수대(弓手隊)는 백기를 잡고, 보창(步槍) 장검대(長劍隊)는 붉은 기를 잡는다.’고 하였다. 

이렇게 부대를 깃발로 구분해놔야 지휘관이 해당 깃발부대에 신호를 보내기 쉬운 것이다. 여전히 TV 사극에서 지휘관이 수천 수만명이 되는 부대 앞에서 목이 터져라 “돌격하라”는 외침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지휘방법은 불가능하다. 해당 부대의 이동을 상징하는 깃발을 들었다가 특정한 움직임을 보여 부대를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래서 전통시대에 군대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배워야 할 것이 바로 깃발의 움직임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조선왕조의 설계자로 불렸던, 정도전(鄭道傳)인 남긴 병서의 내용 중 깃발의 신호체계를 좀 더 쉽게 군사들에게 보급할 수 있도록 군가(軍歌)로 남긴 것이 있다. 그것이 기휘가(旗麾歌)다. 그 내용을 보면 이렇다.

-기휘가(旗麾歌)

麾色有五旗亦五(휘색유오기역오) 휘는 오색이요 기도 역시 오색이라,
指揮以麾應以旗(지휘이휘응이기) 휘로 지휘하고 기로서 답하네.
中黃後黑前則赤(중황후흑전칙적) 중앙에는 황이요, 후미에는 흑 전방에는 적이라,
左靑右白各隨宜(좌청우백각수의) 좌에는 청이니, 우에는 백이라 모두가 조화롭구나.
東西南北視麾指(동서남북시휘지) 동서남북 사방의 휘를 보아라,
擧則軍動伏止之(거칙군동복지지) 들면 출동이요, 내리면 정지로다.
揮則騎步皆戰鬪(휘칙기보개전투) 휘두르면 기병보병 모두 싸우니,
或徐或疾將所期(혹서혹질장소기) 느리고 빠른 것은 장수에게 있구나.
將不知此棄其兵(장부지차기기병) 이것을 모르는 장수는 그 병사를 버림이요,
兵不知此亦失時(병부지차역실시) 이것을 모르는 사병은 역시 때를 놓치는구나.
多多益辦非他事(다다익판비타사) 많을수록 더 잘 아는 것은 다름 아닌,
細聽金鼓明旗麾(세청금고명기휘) 자세히 금고 듣고 기휘를 분명히 보는 것뿐일세.

깃발을 들면 출동해야 하고, 그 깃발이 내려지면 그 자리에서 멈춰야 한다. 만약 이런 기본적인 신호체계를 군사들이 이해하지 못하면 오합지졸이 되고 마는 것이다. 

좀 더 자세히 깃발을 이용하여 군사신호를 보내는 방법을 살펴보면, 입(立)·언(偃)·점(點)·지(指)·마(磨)·휘(麾)·권(捲)·응(應) 등이 있다. 먼저, 입(立)은 평상시 깃발을 세워 놓은 것, 언(偃)은 깃발을 눕히는 것, 점(點)은 깃발을 해당방향에 기울이다가 지면에 닿기 전 다시 들어 올리는 것, 지(指)는 깃발을 점하여 내렸다가 지면에 닿을 정도에서 계속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磨)는 깃발을 왼쪽으로 휘두르는 것, 휘(麾)는 깃발을 오른쪽으로 휘두르는 것, 권(捲)은 깃발을 말아 두는 것, 응(應)은 상관의 깃발 신호를 받아 반복하는 것으로 다시 부관들에게 반복 전달하는 것이다. 특히 조선후기 군사신호에서 가장 중요한 깃발인 인기(認旗)의 경우는 마(磨)를 하면 부관들이 상관에게 달려가야 하며, 휘(麾)할 경우에는 다시 흩어져 원위치를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기에 깃발 동작 각각에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사전에 약속을 하는 것이다. 깃발을 들어 올리면 이동하고, 깃발이 내려지면 멈추고, 깃발을 좌에서 우로 흔들면 공격하고, 우에서 좌로 흔들면 방어하고, 깃발로 계속 가리키고 있으면, 해당 방향을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등의 다양한 군사신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 가장 용감한 군사는 기수병

그래서 조선시대에 가장 용감하고 무예실력이 뛰어난 군사들이 맡은 병종은 신호병이었다. 적들도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이 신호를 담당하는 군사였다. 만약 기수병이 목숨을 잃어 군사신호체계가 붕괴하면 그 부대는 전멸할 가능성도 많았다. 특히 지금도 각 부대를 상징하는 깃발은 전투 현장에 늘 함께하며, 부대가 고지를 탈환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깃발을 세워 점령사실을 시각적으로 알리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현대전에서도 가장 먼저 공격하는 것이 상대의 지휘통신체계다. 전자통신시설이 주를 이루기에 전자폭탄이라고 불리는 EMP( electro-magnetic pulse : 전자기펄스탄)가 가장 먼저 하늘을 가르게 된다. 

이렇게 군사신호용으로 사용하는 깃발을 창에 달아 사용하는 것이 기창이다. 그래서 기창의 움직임에서도 군사신호용 움직임을 그대로 응용한 움직임이 있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진왕마기세(秦王磨旗勢)’에서 ‘마(磨)’의 움직임이다. 여기서 등장하는 ‘진왕(秦王)’은 당태종 이세민(李世民:559-649)이 당나라의 황제로 등극하기 전에 전투에서 이름을 날린 시절에 사용한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군사용 깃발 운용법에서 마(磨)는 깃발을 왼쪽으로 휘두르는 것, 휘(麾)는 깃발을 오른쪽으로 휘두르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기창의 깃발이 휘날리도록 창날을 겨냥하여 몸 밖에서 안쪽으로 휘두르는 것, 동작을 말한다. 창을 단순히 찌르는 도구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창날을 옆으로 눕혀 가로로 칼처럼 베듯이 사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창날에 깃발이 달린 것을 사용하면 정확한 공격기술을 펼치기가 어렵다. 깃발이 공기저항을 받기 때문에 정교하게 휘두를 때는 오히려 역효과를 보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군사신호용이 아니라면, 깃발을 제거하거나 아주 작은 깃발로 대체하는 것이다. 

그래서  『무예도보통지』 의 기창을 설명하는 마지막 구절에는 이런 내용을 더해 놓았다. “그러므로 무릇 군대의 행렬은 각각의 장수들이 무기를 잡고 이어서 방어하는 자세를 연습한 것이므로 대체로 깃발을 매달은 창대에 날을 붙인 것은 그 치고 찌르는 기술을 전하려 하는 것이니, 안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겠는가? 호미와 곰방매도 병기가 되는 것이다.”

위 문장에서는 이를 비유적으로 설명하여 농기구인 호미나 곰방매도 전투에 사용할 수 있으니, 창에 깃발이 달린 것도 전투에 아주 쓸모없는 것은 아니다 라는 것을 에둘러 말하고 있는 것이다. 어찌보면 좀 구차한 변명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무예를 고증하는 입장에서 그런 소소한 내용까지 모두 적어 놓은 모습들이 존경스럽기도 하다. 

후세에 도움이 된다면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기록으로 남겼던 선인들이 존재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이다. 필자의 무예사 공부 또한 후대에 걸어오는 누군가에게 징검다리의 작은 사잇돌 하나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가득하다. 나를 딛고 더 넓고, 더 왕성한 공부를 펼친다면 이 땅의 무예는 좀 더 자유로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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