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을 ‘십월’이 아니고 왜 ‘시월’이라고 부르는 것일까?  활음조 현상 때문이다. 활음조는 발음을 매끄럽게 하여 듣는 사람에게 유창하고 쾌미한 청각적 효과를 주는 음질을 일컫는 말이다. 다시 말해 폭 넓게는 말할 때 발음을 쉽게 하기 위하여, 또는 발음하는 노력을 절약하기 위하여 소리에 변화를 일으키는 현상을 말한다. 호음조(好音調) 또는 유포니(euphony)라고도 한다.

국어에서는 활음조의 효과를 나타내게 하기 위해 특히 'ㄹ'음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쉬운 예로 재녕(載寧)을 재령, 희노(喜怒)를 희로, 허낙(許諾)을 허락, 한나산(漢拏山)을 한라산, 곤난(困難)을 곤란, 한아버지를 할아버지, 모단(牡丹)을 모란으로 부르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사례에서 보아서 알 듯 어렵고 불편하고 거슬리는 소리를 쉽고 부드럽고 매끄러운 소리로 바꾼 것이다.

이처럼 활음조의 계절답게 가을은 복잡하지 않고 명료하다. 거슬리지 않고 간단하다. 다만 생각을 많게 한다는 단점이 있으나 역시 결론은 ‘철학’에 더 힘이 실리는 신기함도 있다. '시월'은 그 시작이나 마찬가지다. 우리 한글의 우수성을 다시금 느끼게 하는 가을 ‘시월’. 덩달아 왠지 쓸쓸하고 수많은 그리움들이 생각난다. 윤동주의 시와 함께.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물어볼/ 이야기 몇가지가 있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을/ 사랑 했는지에 대하여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답하기 위해/ 나는 지금 많은 이들을 사랑해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열심히 살았냐고 물을 것 입니다./ 그때 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도록/ 나는 지금 맞이하고 있는/ 하루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얼른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말과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삶이/ 아름다웠냐고 물을 것입니다./ 나는 그때 기쁘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내 삶의 날들을 기쁨으로/ 아름답게 가꿔가야 하겠습니다./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나는 나에게 어떤 열매를/ 얼마만큼 맺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그때 나는 자랑스럽게 대답하기 위해/ 지금 나는 내 마음 밭에/ 좋은 생각의 씨를 뿌려 놓은/ 좋은 말과 행동의 열매를 부지런히 키워 가겠습니다.” 

이런 가을을 사람들은 아름답다고 한다. 아마도 계절 속에 다른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이 숨어 있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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