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70년만에 대신 받은 '아버지의 무공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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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70년만에 대신 받은 '아버지의 무공훈장'
  • 정준성 기자
  • 승인 2022.06.21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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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생 전진하씨, 72주년 6.25전쟁일을 맞는 감회
- 부친, 6·25 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지구 백마고지 전투서 산화
- 얼굴은 커녕 사진 한장 없는 아버지이지만 화랑무공훈장 대상자
지난해 9월 70여년만에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전진한씨가 훈장과 훈장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수원시)
지난해 9월 70여년만에 아버지의 화랑무공훈장을 받은 전진한씨가 훈장과 훈장증을 바라보고 있다. (사진=수원시)

"오는 25일 72주년 6.25 전쟁일을 맞아 전쟁 당시 공을 세우신 아버지가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힘이 닿는 데까지 온 몸을 바쳐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봉사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에 태어난 전진한씨(70)는 지난해 9월 8일 이후 삶의 방식이 바뀌었다. 

6·25 전쟁 당시 강원도 철원지구 백마고지 전투에서 공을 세운 아버지 고(故) 전병규 일병(당시 24세)이 화랑무공훈장 대상자로서 그 훈장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진한씨의 출생 비밀은 6.25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6·25 전쟁이 한창일 때 아버지 전병규 일병은 임신한 아내를 남겨두고 입대한 뒤 강원도 철원의 전장에서 1952년 전사했다. 

어릴 때부터 지난해까지 할머니 손에서 어렵게 자라면서 얼굴이나 사진은 커녕 아버지가 사용하던 물건이며 유품 하나 없이 생활해온 진한씨는 그동안 집안에서 아버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듣지도 묻지도 못했다.

이 때문에 아버지는 그저 아득한 그리움이자 안타까운 원망의 대상이었다. 전쟁에 가족을 빼앗긴 피해자인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원망할 때도 있었고, 일가를 이룬 뒤에도 아내와 자식들에게조차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지도 못했다.

늦게나마 주인공을 찾은 화랑무공훈장.
늦게나마 주인공을 찾은 화랑무공훈장.

그러던 진한씨가 지난해 9월 가족은 물론 주변에 아버지에 대해서 편안하게 말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그토록 말로만 들어왔던 아버지의 훈장을 전수받은 것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을 잡고 보훈 관련 관공서를 오가던 기억은 있으나 아버지에게 수여가 결정된 무공훈장이 있다는 것은 전혀 몰랐다. 나라를 위한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작은 보답이 70년이라는 세월을 넘어 아들에게 닿은 것이다.

강원도 철원지구 백마고지 전투에서 아버지는 공을 세운 화랑무공훈장 대상자였으나 주소지 등이 명확치 않아 훈장이 전수되지 못하고 수훈자 명단에만 남아 있었다.

화랑무공훈장은 대한민국 네 번째 무공훈장이다. 전투에 참가하거나 접적(接敵)지역에서 적의 공격에 대응하는 등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으로 뚜렷한 무공을 세운 사람에게 수여하도록 상훈법에 규정돼 있다.

늦게나마 고(故) 전병규 일병의 무공훈장이 아들에게 전달된 것은 국방부의 ‘6·25 전쟁 무공훈장 주인공 찾기’ 사업의 성과다.

국방부는 지난 2019년 7월부터 육군본부에 조사단을 꾸려 지방자치단체의 협조 하에 무공훈장 찾아주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주소지 없이 본적지만 남아 있던 고(故) 전병규 일병의 병적을 근거로 지자체의 협조하에 직접 탐문과 추적을 거쳐 유족인 아들을 찾아냈다. 긴 여정 끝에 훈장은 지난해 9월8일 수원시청에서 아들 진한씨에게 전수되기에 이르렀다.

진한씨는 “아버지 얼굴도 모르고 70년을 살았는데, 훈장을 받으니 아버지를 만난 듯이 가슴이 두근거렸다”며 “늦게나마 훈장을 전달받을 수 있어 다행이고, 아버지가 더 자랑스럽고 고맙다”며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훈장은 출가한 자녀들과 손주들은 물론 친구들에게도 큰 자랑거리가 됐다. 명절이면 가족들이 모여 차례상에 훈장을 올려두고 나라를 위해 싸운 자랑스러운 ‘할아버지의 아버지’를 추모한다.

가족 얘기를 꺼낸 적 없던 친구며 주변에도 훈장 자랑에 침이 마른다. 아버지 대신 복장을 갖춰 입고 가슴에 기장을 달고 행사장에 나설 때면 어쩐지 어깨가 더욱 곧게 펴지곤 한다.

아버지의 무공훈장을 전달받은 이후 진한씨 생활도 크게 바뀌었다.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봉사에 발벗고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수원시지회 선양단이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사진=무공수훈자회)
대한민국 무공수훈자회 수원시지회 선양단이 국가유공자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 있다.(사진=무공수훈자회)

훈장을 받은 유공자와 유족 대표만 참여할 수 있는 대한민국무공수훈자회 수원시지회에 가입한 뒤 ‘국가유공자 선양단’으로 활동 중이다. 선양단은 세상을 떠나는 유공자들의 마지막을 애도하며 정중하게 예를 갖춰 마중하는 봉사단체다. 운명을 다한 참전용사의 빈소를 찾아 근조기를 설치하고 경건하게 추모식도 진행한다. 유족들은 참전용사의 마지막을 정성껏 마무리하는 선양단을 향해 “국가유공자의 가족으로서 나라를 사랑한 고인의 마음을 이어받아 책임감 있는 국민으로 살아가겠다”며 감사를 표한다.

그는 “세상을 떠나는 참전자들이 아버지의 전우일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선양단 봉사에 참여하면서 아버지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며 “힘이 닿는 데까지 선양단 활동을 통해 아버지 같은 참전용사들을 위해 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칠순의 진한씨에게 간절한 소원이 하나 남아 있다. 아직까지 찾지 못한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 것이다. 전장에 흩어진 아버지의 유해를 찾고 싶은 마음에 진작에 유전자 시료를 제출해 두고 유해발굴단의 활동 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진한씨는 “70년째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현충원에 비(碑)라도 하나 세우는 게 마지막 소원”이라고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