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도보통지』에 실린 후세에게 ‘기의(譏議):비판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구절.
『무예도보통지』에 실린 후세에게 ‘기의(譏議):비판받을 짓’을 하지 말라는 구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 벌어졌다. 그 전쟁의 이유에는 많은 것이 숨겨져 있다. 단순히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 시도만으로 한정되어 있지 않다. 우크라이나의 땅에 존재하고 있는 석유나 가스를 비롯한 엄청난 천연자원을 획득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도 또 한 가지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황색언론(Yellow Journalism)들은 우크라이나가 지도자들의 무능으로 인해 비핵화 평화노선을 걸어서 군사력을 축소했기 때문에 러시아에 침공당했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하지만 힘만 있으면 무조건 남의 나라를 짓밟아도 된다는 그런 제국주의적 망상들로 가득찬 가해자 논리는 더 이상 들어줄 필요가 없다.

그리고 우크라이나의 대통령인 젤렌스키가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깔보며 그런 이야기가 더 확산되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것은 저열한 인신공격일 뿐이다. 오히려 젤린스키 대통령은 그 동안 친러시아 정치꾼들에 대한 환멸을 정권교체를 통해 풀고자했던 우크라이나인들의 열망의 상징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우크라이나 정치권의 부정부패 문제는 상상 이상으로 심각했다. 그 핵심 원인은 구 소련(소비에트 연방)이었다. 구소련의 정치권에 줄만 있으면 뭐든지 해도 상관없었던 세월이 70여년 존재했었다. 그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러시아였으며, 독립된 우크라이나의 초기 정치세력도 그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국민들은 그런 지독한 정치 환멸을 젤렌스키를 통해 극복하려고 했던 것이다. 블랙코미디를 뛰어넘는 정치꾼들 때문에 코미디언들이 밥그릇을 빼앗길 판이라는 우스갯소리를 그저 흘려 넘길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정치는 마음을 모으는 행위다. 거짓으로 환심을 사면 언젠가는 들통이 난다. 권력의 힘으로 국가폭력을 동원하여 억압하면 언젠가는 부서진다. 오직 ‘진실’과 ‘진심’이 오롯이 담겨야 제대로 된 정책이 펼쳐지는 것이다. 정치는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거리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는 움직임이다. 그 과정에서 ‘자유’와 ‘민주’라는 두 단어가 점점 더 선명해진다.

201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폴란드의 올가 토카르추크(Olga Tokarczuk)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유가 영토나 자원 때문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자주적으로 발전하는 민주주의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이 이번 전쟁의 또 다른 정신적 이유가 될 것이다. 그 ‘민주’에 대한 갈망이 응집되어 우크라이나가 막강한 러시아의 군대를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단단한 것이 철학과 사상이다. 그것은 세대를 거치며 더욱 강화되고 자연스러워진다. 지금 살고 있는 우리들은 선배들의 사상과 철학을 올바르게 후세에 전달시켜야만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비판’의 지점이다. 누구나, 어떤 조직이나 실수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실수를 통해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어야지, 반대로 실수로 인해 좌절하고 퇴보한다면 인류의 앞날은 점점 더 어두워진다. 그때 필요한 것이 올바른 비판인 것이다.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할 당시, 정조가 직접 신하들에게 내린 글에는 비판에 대한 그 작은 실마리가 있다.

 “무예의 신(新)·구보(舊譜) 24목(目)을 너희들에게 모두 주어 상세히 연구케 하여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라는 이름을 내려 주노라. 너희들은 널리 자료를 모으고 광범위하게 고증하여 원활하도록 범례(凡例)를 작성하고, 그 체제를 바로 잡아야 할 것이다. 무릇 그 득실을 따져 역시 논단(論斷)을 다시 하여, 그 단락(段落)의 말을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하라. 혹시라도 의심이 들도록 꼬드기거나 어지럽게 섞이지 않게 하여 선배들의 아름다운 뜻을 더욱 드높이고 후세 사람들에게 비판 받을 짓을 하지말라.” 

정조는 군사들의 훈련에 사용할 무예서에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이야기를 담아 놓았다. 그 당부의 이야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첫째, 지금 이 무예서를 쓰는 사람들의 이해득실을 따져 그 내용이나 의미를 바꾸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둘째, 그 편찬 과정에서 의심이 들도록 꼬드기거나 혼란스러움을 차단하여 (무사)선배들의 아름다운 뜻을 드높여야 한다. 셋째, 마지막으로 후세에게 비판 받을 짓은 결코 하지 말라. 

이렇게 ‘지금’의 시선이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긴 안목으로  『무예도보통지』를 편찬하라고 강조했다. 거기에는 ‘과거’ 선배들이 몸으로 풀어내었던 ‘가치’를 온전히 풀어내야 한다는 비판의 준거기준을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사람들에게 ‘비판’ 받지 않도록, ‘지금’을 충실히 담아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비판은 당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통합적으로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

지금 러시아가 막강한 군사력을 동원하여 벌인 전쟁은 조심스럽지만, 후세에게 치명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 전쟁에는 과거에 대한 염원도, 미래에 대한 배려도 없으며 오직 ‘지금’ 현재 러시아의 패권주의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조선이라는 봉건주의시대를 넘어, 제국시대를 건너, 민주공화국으로 발전한 대한민국. 과거 선배들이 지키고자 했던 아름다운 철학과 미래 후세들에게 남겨줄 사상이 무엇인지 ‘지금’ 오늘을 사는 우리는 항상 경계하고 또 경계하며 풀어가야 한다. 정조의 하명처럼 후세에게 비판받을 짓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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