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공무원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수원시 자동차 매매 협동조합 사무실. (사진=김충영 필자)
수원시 자동차 매매 협동조합 사무실. (사진=김충영 필자)

필자는 2009년 7월1일자로 수원시 화성사업소장에서 수원시 건설교통국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건설교통국에는 건설과, 대중교통과, 도로교통과, 재난관리과가 있었다. 건설과에서는 도로건설과 도로관리업무를, 대중교통과에서는 버스와 택시교통업무, 자동차관리업무를 담당했다. 

도로교통과에서는 도로시설물 관리업무와 교통관제센터 운영을, 재난관리과에서는 민방위업무와 재난업무, 안전도시 업무를 담당했다. 과별 업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눈에 띄는 업무가 보였다. 자동차 관리업무였다. 그중에서도 중고자동차 관리업무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수원시가 중고자동차의 메카가 된 것은 한 공무원의 열정과 헌신이 있었다. 2007년 9월 3일 수원시 건설교통국 대중교통과 자동차관리팀장으로 발령을 받은 신오현 팀장이었다. 그는 새로운 일을 맡자마자 중고자동차를 속아서 샀다는 등 피해민원 전화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쇄도했다고 한다. 

피해민원을 접수해도 기존 보상기준이 마땅치 않아, 대부분 매매업체를 행정 지도해 극히 일부라도 배상받도록 중재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중고자동차를 사는 사람의 대부분은 사회초년생 등 경제적 형편이 어려워 중고차를 매입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까 사회적·경제적 약자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렇게 어려운 계층이 사기를 당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하든 수원시민 만큼은 중고자동차를 속아서 사는 사람이 없게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다. 국가가 이를 외면하거나 방치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자동차 성능점검 업자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보상규정을 만들어 놓고 사용했으며, 그마저도 갖가지 핑계로 그 책임을 회피했다. 

소비자 피해에 관한 법적 보상제도가 너무 허술해 이에 대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자동차관리법, 소비자보호법, 민법, 관련 판례를 연구하고 현장을 조사한 결과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냈다고 한다. 방법은 자동차 관리법상 관련규정의 허점을 다른 행정행위로 보완하는 것이었다. 현장조사를 통해 피해종류와 정도별 적정보상액을 산정하는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이 포함되는 권장약관을 만들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끝에 권장약관을 만들었으나 이 약관을 수원시 전역에서 사용하게 만들 수 있는 묘안을 찾아야 했다. 매매업자, 성능점검업자, 매수소비자 당사자들 간의 거래에 관이 개입해 관이 만든 약관을 강제로 사용하도록 한다는 것이 적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를 실행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추진논리와 방침을 세웠다.

첫째로, 현재 제각각 사용되고 있는 약관은 그 내용이 일방적으로 소비자에게 불리하고 불합리 하다.

둘째로, 그 업체별 불합리한 약관들에 대해여 자동차관리법에 의한 개선명령을 하되, 개선되는 업체별 약관이 수원시가 수긍할 수 있는 수준의 공정성과 합리성을 갖추도록 요구한다.
 
셋째로, 각 업체에서 그런 약관을 만들기 어려우니, 가급적 수원시가 만든 권장약관을 사용토록 적극 행정지도 한다.

넷째, 권장약관이 강제 시행력이 있어야 한다.

다섯째, 업계의 동기 부여와 선전효과 극대화를 위해 가급적 업계 스스로의 자각과 혁신 자정의지가 드러나도록 추진한다.

그런데 정작 개선명령을 하자 반대의 목소리가 거세게 나오기 시작했다. 부실 성능점검으로 인해 소비자들에게 피해보상을 하게 될 성능점검업자와 매매업자들이 강력한 반대 의사를 밝혔다. 시청 내부에서도 반대하는 분위기였다. 가만히 있으면 조용히 지나갈 수 있는데 괜한 일을 만들어 풍파를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안팎의 저항과 난관에 봉착했다. 수백 명의 업자들에게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2007년 12월 28일 시청 강당에서 관련사업자를 대상으로 약관설명회를 가졌다.

사업자와 소비자가 함께 살고 미래에 업계가 번영할 방법은 정직과 신뢰를 바탕으로 영업해 소비자의 지속적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리고 신뢰를 얻는 방법이 권장약관의 사용이라고 설득해 나갔다. 

당시 자동차매매사업조합 수원지부(지부장 김봉일)의 적극적인 협조 하에, 수원시 전체 사업자들이 수원시가 만든 권장약관을 사용하기로 하고 인감증명을 첨부, 서면 약속을 했다. 그리고 2008년 1월 1일부로 권장약관 시행을 결행했다. 

중고차 피해 소비자 보상기준 마련기사, 경기일보 2008.1.15. (자료=경기일보)
중고차 피해 소비자 보상기준 마련기사, 경기일보 2008.1.15. (자료=경기일보)

수원시의 이런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는 내용이 일간지에 소개됐다. 경기일보, 경기신문, 기호일보, 현대일보, 각 인터넷 매체 등이 기사화했다. 그리고 경기방송과 HSB방송 또한 수원시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러나 언론의 홍보기사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제도에 익숙하지 않은 사업자들의 항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래서 찾은 방법이 ‘수원시 중고차매매업 발전을 위한 사람들의 모임 다음카페’를 2008년 2월 17일 개설해 공개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다음카페에는 중고자동차 매매사업 권장약관과 제정 취지, 약관의 법적지위 및 강제력, 그동안 사업자들이 이의를 제기했던 내용과 그에 대한 답변, 신문, 방송의 홍보내용 등을 소개했다. 이후 사업자들의 항의전화가 거의 사라지게 됐다. 

결국 ‘수원시 중고자동차 성능점검 및 매매 등에 관한 약관’ 제도가 정착되기 시작했다. 그러자 2009년 3월 11일 KBS는 소비자고발 프로그램에서 수원시의 권장약관 시행을 혁신사례로 소개했다. KBS 방송 이후 수원시 중고차시장이 전국적인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됐다. 그리하여 수원의 중고자동차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나게 됐다. 

수원 중고자동차 신뢰지수 ‘톱’기사, 중앙일보 2012.6.5. (자료=중앙일보)  
수원 중고자동차 신뢰지수 ‘톱’기사, 중앙일보 2012.6.5. (자료=중앙일보)  

수원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의 혁신적인 틀을 마련한 신오현 팀장은 3년4개월간의 임기를 마치고 2010년 12월말 청소행정과 시설관리팀장을 거쳐 팔달구 경제교통과 지역경제팀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2012년 6월 5일자 중앙일보에 수원중고자동차 신뢰지수 ‘톱’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났다. 이는 수원시가 중고자동차 매매시장의 메카임을 증명해주는 기사였다.

중고자동차 매매업체 현황표.
중고자동차 매매업체 현황표.

2021년 말 기준 우리나라 중고자동차 매매업체 관련현황을 살펴보면 전국 6301개 업체가  등록됐다. 이 가운데 경기도에 1377개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어서 21.8%를 차지하고 있다. 수원시에는 307개 업체가 영업을 하고 있어서 4.8%, 경기도 중에서는 22.3%를 차지하고 있다. 

종사원 현황을 살펴보면 전국에서 3만5813명이 종사하고 있다. 이중 경기도에는 1만3595명이 종사하고 있어 37.9%가 일하고 있다. 수원시에는 5235명이 일하고 있어 14.6%를 차지하고 있다. 경기도 중에서는 38.5%의 종사원이 일하고 있다. 

판매대수를 살펴보면 전국에서 257만2300대가 판매됐다. 이중 경기도에서 판매된 자동차는 87만7943대로 34.1%다. 수원시에서 판매된 자동차 대수는 22만5000대여서 8.7%의 비중을 보이고 있다. 경기도내에서는 25.6%의 비율을 보이고 있어서 수원시가 명실상부한 중고자동차 판매시장의 메카임을 입증해주고 있다. 

수원시 자동차 매매업체 위치도. (자료=구글지도) 
수원시 자동차 매매업체 위치도. (자료=구글지도) 

신오현 팀장의 소회를 들어보았다. 그는 당시 참으로 외로웠다고 술회했다. 수원시 조직 내에서뿐만 아니라 업계에서도 모두 반대하는 일을 혼자 해보겠다고 수없는 밤을 새워가며 약관의 내용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스스로 의지를 다졌다고 한다.

그렇게 한 것이 매스컴으로부터 모범사례로 소개되고, 수원시가 중고자동차의 메카가 되는데 일조한 것을 뿌듯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그는 2014년 4월 1일 전남 나주시에 있는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국립전파연구원에 자원하여 전출을 가게 된다. 그는 나주에 있는 동안 귀농을 준비, 현재 농부로 살아가고 있다. 

2017년 4월에는 경기도 자동차 매매사업조합 전무이사로 발탁돼 2018년 11월 30일까지 근무하고 다시 나주로 내려가 영농을 하며 살고 있다. 그의 노고에 박수를 보낸다. 

저작권자 © 수원일보 - 특례시 최고의 디지털 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