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삼겹살을 구워먹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내 20대 초반쯤이니까 1980년대 들어서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제대한 후 한동안 백수시절을 거쳐 용산에 있는 육군본부에 취직했고 퇴근 후엔 그 앞 식당가에서 소주에 삼겹살을 먹곤 했다.

그런데 나는 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돼지고기를 싫어했다.

어렸을 때 동네에서 잔치가 벌어졌다. 우리 집 보다 잘 사는 집안이어서 돼지도 두 마리나 잡았다. 돼지 오줌보에 지푸라기를 넣어 한참 차며 놀다가 돌아와 보니 이웃집 아주머니가 부른다. 돼지고기 수육이 그득히 담긴 접시를 주면서 저 뒤에 숨어서 얼른 먹으라는 것이다.

이게 웬 횡재인가. 고기는 일 년에 몇 번 먹을 기회가 없었다. 제사나 명절, 어른들 생신에나 조금 맛볼 수 있었다. 급하게 먹다가 체하고 말았다.

그 뒤부터는 돼지고기 냄새만 맡아도 어지럽고 속이 느글거렸다. 군대에서는 어쩔 수없이 먹긴 했지만 비계는 떼어버렸다. ‘말 상사’는 배가 불렀다고 뒤통수를 때렸다.

그런데 삼겹살은 먹을 만했다. 상추에, 마늘에, 파 채 무침에, 기름소금에 찍은 고기 한 점을 올려 먹으면 저절로 소주가 따라왔다. 고기의 신세계가 열렸다. 그래도 여전히 1인분을 채우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살던 시절, 사실 고기는 구워 먹는 것이 아니었다. 돼지고기 한 근을 사오면 김치나 부두, 배추나 무 등 이것저것을 고추장과 함께 넣어 큰 솥에 국을 끓였다. 그 귀한 고기를 구워먹는 시대가 온 것이다.

들판이나 강변, 캠핑장 등 야외로 놀러나간 사람들은 한 결 같이 삼겹살을 구웠다. 그동안 고기를 못 먹었던 한풀이라도 하듯.

그때 슬레이트가 불판으로 각광을 받았다. 휴대하기 가볍고 기름을 잘 빨아들이는데다 쓰고 나서 버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 행위였는지 몰랐다.

슬레이트는 석면을 10~15% 함유한 대표적인 석면 건축자재다.

석면은 카드뮴, 비소, 청산가스, 미세먼지 등과 함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발표한 1군(group 1) 발암물질이다. 인간에게 암을 유발하는 것이 확실한 물질이다. 석면물질이 인체에 유입되면 10년에서 40년까지 잠복기를 거쳐 폐암이나 석면폐증, 중피종 등의 악성 질환을 일으켜 ‘조용한 살인자’로 불리기도 한다.

그러나 석면의 단열성, 보온성 등의 기능이 뛰어나기 때문에 지붕 슬레이트나 관공서 사무실, 학교 교실 천정 마감재로 사용했다.

이제 정부와 각 지방정부들은 석면을 제거하는 일에 나섰다. 수원시도 오래 전부터 석면 제거사업을 해오고 있다.

올해도 ‘슬레이트 철거 및 지붕개량 지원사업’ 신청자를 모집한다. 수원시가 주택, 창고·축사의 슬레이트 지붕·벽체 철거 비용, 석면 폐기물 처리비용, 지붕개량 공사비용 일부를 지원한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교실 석면도 하루빨리 안전하게 제거돼야 한다. 경기도와 도교육청은 지난해까지 목표량의 약 50%인 430만㎡(추진 중 포함 1611개교)의 석면을 제거했다고 발표했다. 이 말은 아직도 도내 학교 가운데 절반에 석면교실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6년부터 2027년까지 전국 1만3000여 학교의 석면을 완전히 해체·제거한다는 계획이다.

서둘러야 한다. 주택이건 학교 교실이건 가릴 것 없이 하루라도 빨리 완전히 제거해 석면 공포에서 벗어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국민 건강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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