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을 먹고 난 뒤 산책길에 나섰다. 팔달문 시장을 돌아 수원천 상류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남수문과 수원사를 지나니 커다란 달 조형물을 설치한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오늘도 연인과 가족들이 달 조형물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이젠 나름 명소가 된 것 같다. 날이 좀 더 따듯해지면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설 것이다. 지난 가을에도 그랬다.

매향교를 건너 수원천으로 내려선다.

에이, 또 만났다. 큰 개와 산책하러 나온 그 사내. 별로 반갑지 않은 사람이다. 개들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그냥 가는 모습을 두어 번 봤기 때문이다.

내가 수원천에서 만난 대부분의 반려견주들은 분변용 봉투에 배설물을 치운다. 어떤 이는 물병까지 갖고 다니며 흔적을 깨끗하게 지우려 애쓴다. 이 정도는 돼야 애견인의 자격이 있는데...

궁시렁거리며 걷다보니 어느덧 화홍문이 보인다. 어, 그런데 수문 조명이 좀 색다르다. 전엔 일곱빛깔 무지개를 상징하는 조명을 했던 걸로 기억하고 있는데 파란색·노란색뿐이다.

화홍문을 지나 용연으로 들어섰다. 수원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을 보여주는 곳인데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아하! 알겠다. 화홍문 수문의 파란색·노란색이 우크라이나 국기였구나.

화홍문 수문에 비춰진 우크라이나 국기 조명 (사진=김우영 필자)
화홍문 수문에 비춰진 우크라이나 국기 조명 (사진=김우영 필자)

방화수류정 아래 용연의 바위에는 우크라이나 국기와 ‘NO WAR’(전쟁 반대),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등 평화기원 메시지가 미디어파사드로 비춰지고 있었다.

다시 보니 수원천 건너 오른쪽 성벽 조명 일부도 파란색·노란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수원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끝날 때까지 매일 밤 조명을 비출 예정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가 하루빨리 종료되고, 평화가 다시 찾아오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담아 조명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방화수류정 아래 암벽의 평화기원 메시지 미디어파사드 ‘NO WAR’ (사진=김우영 필자)
방화수류정 아래 암벽의 평화기원 메시지 미디어파사드 ‘NO WAR’ (사진=김우영 필자)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전해지고 있다.

공포에 질린 시민들이 대피소, 지하철, 지하실, 파괴된 교량 아래 모여 있는 영상, 사망한 채 버려진 군인의 시신이 눈에 덮여있는 사진, 민가지역에 떨어지는 폭탄...

특히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한 것은 슈퍼마켓에 가던 여섯 살 소녀가 러시아군의 포격을 받아 숨진 사진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져 축 늘어져 있는 어린 딸과, 피로 범벅이 된 채 흐느껴 울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은 아마 영원히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참상이 알려지면서 러시아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들끓고 있다.

우리나라 특수부대 장교 출신의 한 청년은 참전하겠다며 그의 ‘팀원’들과 우크라이나로 건너갔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전역을 여행금지 지역으로 지정했으며, 러시아와 벨라루스 내 우크라이나 접경지역도 여행경보 4단계(여행금지)를 발령한 상태다.

여행 금지국가에 들어가면 1년 징역 또는 1000만원 벌금 처벌을 받는다.

그의 행위는 분명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다.

하지만 “처벌받는다고 우리가 보유한 기술, 지식, 전문성을 통해서 우크라이나를 도와주지 않고 그냥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는 의협심만큼은 인정해야겠다.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미디어파사드 (사진=김우영 필자)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미디어파사드. (사진=김우영 필자)

우크라이나를 돕자는 움직임이 국내에서도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국내기업들이 대거 동참하고 있다. 지방정부, 연예인, 시민들의 기부행렬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모든 국민의 안녕과 무사를 빈다. 끝까지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올 때 내 여행지 1순위는 우크라이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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