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격구를 하는 모습이다. 손에는 장시를 들고 여러 마리의 말들과 뒤엉켜 공을 지켜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격구를 잘하면 무예실력이 출중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조선전기 무과시험 최종시험 과목으로 격구가 채택됐다. (사진=필자 최형국)
필자가 격구를 하는 모습이다. 손에는 장시를 들고 여러 마리의 말들과 뒤엉켜 공을 지켜내는 일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격구를 잘하면 무예실력이 출중하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조선전기 무과시험 최종시험 과목으로 격구가 채택됐다. (사진=필자 최형국)

“태조 원년(1392), 조선 개국 공신들을 책봉하고 순서대로 휴가를 주어 궁궐의 넓은 마당에서 말을 달리며 공을 치는 격구(擊毬)를 하도록 했다.”

이 문장은 <무예도보통지(武藝圖譜通志)> 중 선대 국왕들의 군사적 업적을 순서대로 기술한 <병기총서(兵技總敍)> 중 태조를 설명하는 첫 문장이다. 고려라는 500년 왕조국가를 꺼꾸러뜨리고, 조선이라는 새로운 왕조국가를 개창하는데 애쓴 사람들에 대한 포상을 가장 먼저 언급하였다. 그리고 차례대로 휴가를 줘서 쉬게 하고, 격구를 시켰다. 다른 어떤 것보다도 격구를 시킨 것을 강조한 것이다.

격구(擊毬)는 말을 타고 장시(杖匙)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공을 쳐서 점수를 따는 놀이이자 군사무예였다. 재미난 것은 요즘의 프로 야구나 축구처럼 관람객들이 담장을 이룰 정도로 운집한 곳에서 격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 기록을 보면 발해 때부터 시작했던 격구가 고려시대에는 최대의 관중동원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격구에 조선건국의 비밀이 담겨 있다. 바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시대 최고의 격구스타로 세간에 알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계가 출전하는 격구장에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그 화려한 격구 기술을 보며 웃고 박수치며 흥겨워했다. 이성계는 현재의 함경도 일대인 동북면에서 세력을 확대해 조선을 건국하였다. 실은 그곳에서의 삶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기에 격구를 비롯한 다양한 마상놀이에 최적화된 상황이었다.

그래서 훈민정음으로 쓴 최초의 작품으로인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도 태조 이성계의 격구하는 모습이 담겨 있기까지 하다. 이 책이 조선을 세우기까지 목조ㆍ익조ㆍ도조ㆍ환조ㆍ태조ㆍ태종의 위업을 중국 고사(古事)에 비유하여 지은 노래이기에 거기에 격구가 등장한다는 것은 상징성이 충분하다는 이야기다.

몇 해 전 TV사극 드라마 제목에 <육룡이 나르샤>가 있었다. ‘길태미’라는 삼한 제일검으로 등장하는 배우 박혁권의 매력만점인 연기가 아직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정도니 상당한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 제목이 바로 <용비어천가>의 도입부 가사 내용이다. 제 1장에는 우리가 너무나도 많이 접했던, “海東(해동) 六龍(육룡)이  일마다 天福(천복)이시니”로 시작한다. 

그리고 44장에 이성계의 격구하는 모습을 이렇게 그려놨다. 
리실  우희 티시나 二軍(이군) 鞠手(국수)깃그니.
君命(군명)엣 리어늘 겨틔 엇마시니 九逵(구규) 都人(도인)이 다 놀라

현대어로 풀어보면 이렇다. ‘놀이 하는 공을 말 위에서 연달아 치자 두 진영의 노련한 국수들도 기뻐하도다. 왕의 명령 받들어 공놀이하며 말 옆에서 공을 가로막으니 도성 사람들이 모두 놀라도다.’ 앞의 문장은 당나라의 선종(宣宗) 이침(李忱)의 이야기인데, 당 선종도 격구실력이 뛰어나 장안 최고의 프로 격구선수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리고 그 다음 문장에 당 선종과 비교하여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멋진 격구 모습을 노랫가사로 만들어 낸 것이다.

필자도 격구를 훈련하고 실제로 경기에 참여해 보았지만, 그 기술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아마도 말을 타고 무예를 하는 마상무예 중 가장 고난이도 무예기술이 격구에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조선전기에 격구의 사치성과 놀이성으로 인해 격구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주 신하들의 상소문 주제로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격구의 본질은 국가와 백성을 지키는 ‘무예’이니 결코 폐할 수 없다는 국왕의 단호한 의견이 여러 사료에 보인다.

아무튼 이성계가 일반 장수에서 일국의 국왕으로 등극하게 된 것은 격구 스타로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렸다는 것과도 상당한 연관이 있다. 속된 말로,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이라는 표현이 있다. 능력이 제아무리 출중할지라도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지 못하면 큰일을 도모하기가 어렵다. 일단 무엇인가를 하려면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선거의 계절, 구설수에 오를 수 밖에 없는 (예비)후보자분들 모두 멋지게 완주하여 유종의 미를 거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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