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인년(壬寅年) 새해가 밝았다. 

환란과 격랑속에 맞이하는 한해 첫날이지만 그나마 희망을 가져본다. 

대통령선거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누가 당선이 되고 누가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지금보다 나아지겠지 하는 바람이 간절해서다.

그러면서 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숱하게 쏟아낸 장밋빛 공약들이 현실이 되기를 꿈꿔본다.

흔히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면서 다사다난했다고 말한다. 

많은 일이 있었고,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상투적(常套的) 어법이지만 온갖 격랑을 겪으며 지난 한 해를 보낸 것은 자명하다. 

특히 국내적으로 예측불허의 변수들이 융기(隆起)를 거듭하는 혼돈 속에서 국민들은 어떻게 처신해야 될지 가늠하기조차 힘든 한 해였다. 

대선을 사이에 두고 여야가 벌인 극한 대치로 평안할 날 없었고 코로나 환란으로 고달픈 삶을 이어가는 서민들의 가슴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게다가 좋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은 경제 상황은 찬 겨울바람 만큼 국민의 뚫린 가슴에 한기를 불어넣었다.

그래서 막연하기는 하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임인년 한해 희망의 기대감을 가져본다.

대선을 앞두고 하루도 빠짐없이 편을 갈라 다투고, 서로 욕을 하고 비난하기를 밥먹듯 해온 정치권의 추잡함이 우리 가정이나 사회에까지 물이 들고 있다. 

배려와 관용은 사라지고, 합리적인 사고와 이성적인 판단이 자취를 감춘 가정과 사회는 저급하고 상처뿐인 감정의 찌꺼기를 여과 없이 쏟아낼 뿐이다. 

이런 사회 속에선 우리의 삶의 질도 좋아질 수 없다.

그렇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나라가 이런 혼용(混用)의 사회로 가는 것을 방치하고 동조해서는 안될 사명이 있다. 

비록 이런 사회의 치유와 바램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지가 어렵고 힘들다고 할지라도 새해만큼은 소망의 꿈을 자유롭게 꾸고 희망을 가져봐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든, 정치권이든 또 다른 영역이든 하루하루 작은 발전이 있어야 보다 나은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기회라도 가질 수 있어서다. 

희망은 곧 잘 이런 환경 속에서 싹틔우고 꽃 피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꿈이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해서 다른 사람들이 소망의 꿈을 이야기하면 언제나 공감으로 화답한다. 희망이 혼재돼 있어서다.

올해엔 이런 꿈들을 덕담 속에 담아 서로 많이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 가운데에는 올해의 희망을 이야기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금처럼 불확실성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희망이 필요하다. 

그 누구도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며 습관처럼 주고받던 새해 인사가 올해엔  한층 뜻 깊고 감사하게 느껴졌으면 좋겠다. 

거기에 기대와 소망을 갖고 덕담을 나누면 더욱 좋겠다. 

사실 절망속에서도 희망을 이야기 하나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다.

다시 출발하는 새로운 기회는 그래서 미래를 향한 첫발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올해엔 이런 희망들을 덕담 속에 담아 서로 많이 나누었으면 하는 바람도 간절하다.. 

새해가 아름답다고 말하는 것은 다시 시작하는 시간이 돌아와서가 아니다. 

찾아온 시간에 희망을 노래하고 희망 속에 새로운 소원을 품을 수 있어서다. 

임인년, '터널 끝에 빛이 있다'는 화두처럼 정치에서 출구를 찾아 희망의 사회로 나가는 원년이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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