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사유 예시’가 교육 단상 블로그의 단골 유입 키워드의 자리를 차지하더니 마침내 K 선생님으로부터 명퇴 얘기를 듣게 되었고 이게 남의 얘기가 아니구나 싶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다더니… 교육 말고는 아는 것이 별로 없는, 아름다운 교육자인 건 분명하지만 세상일에는 더러 멍청한 면을 보여주는 K 선생님이 명퇴를 해서 무얼 하시겠다는 걸까요? 물어나 봅시다.

놀겠다는 대답이 쉽겠지요? 무얼 하면서요? 골프? 사십여 년을! 그 오랜 세월 누구와 함께? 혹 해외여행인가요? 사십여 년 유럽으로 아메리카로 동남아로 마구 돌아다닐 작정입니까? 골프 치러 나다니고 패키지 해외여행 두루두루 다닌다는 선배 얘기에 혹했습니까? 교사시절보다 더 바쁘고 신난다는 그 말을 믿고 있습니까? 사십여 년 그렇게 하겠다는 삶이 부럽습니까? 그게 두고두고 그리던 희망사항이었습니까?

아니면, 인생 백세 시대여서 제2의 삶을 꿈꾸어 오신 건가요? 새로 회사 하나를 세우게 됩니까? 그렇다면 더 드릴 말씀이 없지만 혹 혼자서 통닭집을 운영해보겠다면 글쎄요, 육십을 바라보며 새로 차릴 통닭집으로 한 동네에 몇 집씩인 저 전문가들을 제쳐버릴 무슨 묘책이라도 있는 걸까요?

악착같이 큰돈을 벌 욕심은 없습니까? 그건 현명한 생각일 것입니다. 이른바 ‘공부하기 딱 좋은 나이’여서 취업 시장 인기도가 높은 지게차 운전 기능사 자격증이나 TV ‘먹방’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한식 조리 기능사 자격증을 따서 K 선생님의 존재감을 과시하고 싶습니까? 우리나라 노인인구 증가율이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요양보호사도 유망 전문 인력의 한 가지이겠지요. 좋은 생각일 것 같습니다.

그럼 현실적 제안을 해보겠습니다. 몇 해 더 근무한다고 해서 그 꿈의 실현이 불가능해집니까? 그렇게 급하게 되었습니까? 그 일들이 선생님을 기다려주지 않을 것 같습니까?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세상은 자꾸 변해서 내년 내후년에는 또 어떤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올해 명퇴자도 5315명이나 된다죠? 걱정스러운 건, 남들이 그만둔다니까 나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다가 어설픈 결정을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일자리 부족 문제로 눈치가 보입니까? 그건 교육의 본질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남들이 하니까 나도 하겠다는 것만큼 어리석고 한심한 생각도 없지 싶습니다. 인생이, 우리의 이 삶이 그토록 간단한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건 좀 유치한 얘기지만 교장교감이 꼴도 보기 싫습니까? 삼삼오오 모여서 교장교감 성토하면 재미있긴 하지요. 이참에 명퇴를 하고 그 사람들 지시를 받지 않게 되는 순간 통쾌한 느낌도 없진 않겠지요. 그렇지만 명퇴한 다음에도 그렇게 모여서 교장교감을 성토합니까? 그들이 미워서 명퇴를 하고 맙니까? 사실은 그들도 잘하고 싶은 사람들 아닐까요?

제가 선생님의 고귀한 견해를 놓쳤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지금 열거한 이유 중 한 가지라면 부디 재고해보시기 바랍니다. 교사는 전문가입니다. 학부모들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만만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호락호락 소홀히 대하지도 않습니다. 그건 선생님의 풍부한 경험과 지식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적어도 그런 선생님이라면 아이들을 잘못 다루진 않을 것이라는 믿음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자녀의 선생님이라면 대하기가 좀 어려운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요?

후배들에겐 어떤 선배입니까? 이제 “이론대로 가르쳐보고 안 되면 얘기하세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선생님은 그런 선배가 존경스럽지 않았습니까? 날이 갈수록 삭막해지는 세상의 저 아이들을 버리고 도대체 어디로 가겠다는 것입니까? 지금까지 읽은 책, 경험한 일들은 또 어떻게 하겠다는 것입니까? 교육의 길로 나설 때의 그 각오는 헌신짝이 되었습니까?

이제야 교육이 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게 된 것도 부정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이제 앞으로 남은 몇 해에 그동안의 몇 십 년보다 더 값진 교육을 할 수 있다면 어떻게 그 교단을 버리고 교문을 나설 수 있단 말입니까? 저 아이들을 그리워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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