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는 여론조사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거의 날마다 신문, 방송 등 언론매체(조사)에서 각양각색의 여론조사 결과를 접하고 있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 6월 지자체 선거를 앞두고 대선후보의 지지도 조사, 지자체 여론조사, 국민 사회의식 조사, TV 시청률 조사, 등 그 유형은 실로 다양하다. 또한 소위 '마케팅 서베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업제품의 이미지 조사는 이제 기업의 상품 개발 및 판매전략의 필수적 요인으로 인식되고 있다. 심지어 TV 오락프로에서조차 여론조사를 이용한 퀴즈가 등장할 정도로 여론조사는 우리 곁에 다가와 있으니 가히 여론조사 홍수시대라는 말이 지나친 것도 아니다.

자명하게도 민주사회는 대의정치를 그 바탕에 두고 있으니 올바른 여론의 수렴과정과 이에 입각한 정책의 수립과 집행은 민주사회의 필요 불가결의 요건이다. 이제 여론조사는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가에서 여론 수렴자로서 그 당위성을 인정받고 있으며, 이를 선도해 나가는 언론은 정보전달자의 기능에서 나아가 사회제도, 민주사회 구축 전진기지의 기능까지 요청받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 대해 꼼꼼히 따져보고 생각해 볼 일이 있다. 과연 여론조사가 올바르게 수행되고 있는가? 현실에서 우리가 접하는 여론조사의 생산과 결과의 발표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심각한 회의가 드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저질의 여론조사는 여론을 오도하게 되며, 왜곡된 여론조사에 입각한 정책 수립, 지지도 및 이미지 조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 일관되지 못한 정부 정책의 이면에는 올바르지 못한 여론조사가 자리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여론조사가 사회 일반에 폭넓게 적용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 꽃피우게 된 통계학의 '표본이론'과 그 맥락을 같이한다.

'통계적 추론'이란 관심의 대상이 되는 모집단의 축소판인 표본을 획득하여 그 성격을 규명함으로써 모집단을 이해하고자 하는 행위를 말하는데 이때 어떤 표본을 얼마만큼 어떻게 획득할 것인가 하는 점이 문제시된다.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표본이론이다.

흔히 표본의 크기가 1000개인 조사보다는 1만개인 조사가 10배는 더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그렇지 않다. 표본 수의 결정 문제는 조사의 신뢰도, 추정의 오차한계와 같은 통계이론과 결부된 것이지만 표본이론에 의하면 일정 크기 수준의 표본이 확보되면 이로써 모집단을 추론하는데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1930년대 갤럽(Gallup)연구소를 설립한 조지 갤럽은 이점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한 바 있다. “국을 끓인다. 국 맛을 본다. 가마솥에 끓일 때와 냄비에 끓일 때 맛보는 양이 다른가? 당신은 가마솥에 끓일 때 한 바가지의 양으로 맛을 볼 것이며, 냄비에 끓일 때 한 숟가락의 양으로 맛을 보는가? 문제는 무엇인가? 국 맛을 보기에 앞서 잘 젓는 행위가 필요하다. 소위 표본이론에서는 표본 틀(Sam piing Scheme) 이라는 도구를 써서 <국을 잘 젓는 행위>를 대신한다.”

이제 우리는 고도 민주사회를 지향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각 분야에 걸쳐 국민 대중의 의견을 수렴하여 의사결정을 기반으로 삼으려는 여론조사는 더욱 폭넓고 급속하게 신장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국민의 여론을 오도하지 않는 여론조사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가?

첫째, 정확하고 공정한 여론조사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요구된다. 예를 들면 프랑스는 1977년 '여론조사에 관한 법’을 제정하여 여론조사 결과를 외부로 공개하는 경우 여론조사의 목적, 질문내용, 조사지역, 피조사자의 수 등에 대해 사전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이 법은 또한 필요하면 피조사자의 주소와 성명, 명단을 제출토록 한 뒤 이들에 대해 같은 내용을 똑같은 방법으로 재조사토록 요구한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가? 필자는 가끔 여론조사 전화를 받으면 끝까지 응답한다. 하지만 응답 도중에 지역, 나이, 직업 등에 대해서 응답 대상이 아니라며 일방적으로 끊어버린다. 하지만 왜 응답 대상이 아닌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과연 공정하고 정확한 여론조사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둘째, 법적 독립성을 인정받는 공영 여론조사 기구가 발족 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도 신문의 발행 부수를 조사하는 ABC(발행 부스 公事기구)조사, TV 시청률 공동 조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는 각 신문사, 방송사별로 시행되는 자체 조사는 나름대로 표본추출과 조사 방법에 따른 문제점 때문에 공신력 있는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데서 이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생각된다. 또한 민영 여론조사 기관이 발표하는 여론조사는 발표전에 이 기구에 의하여 그 생산과정을 검토, 추인받는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셋째, 여론조사를 이용하는 사람들은 윤리(倫理)를 갖추어야 한다. 개인적, 기호 선택의 편견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하는 그릇된 의도가 작동하면 이미 그 여론조사는 의견제시 자의 역할을 봉쇄당한 것이 된다. 여론조사는 자기 설(褻)을 위로하려는 방편으로 수행되어서는 안 된다. 여론조사는 오직 객관성과 가치중립성이 철두철미하게 입각해야 한다.

명심할 일이다. 파도치는 여론조사는 파도치는 정책, 파도치는 사회를 만든다. 파도치는 여론조사는 파도치는 국가를 만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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