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기억하시겠어요?” 수십 년 만의 전화는 그렇게 시작된다. 내가 이미 중년이니 당신은 망령이 나서 날 기억이나 하겠나 싶은 걸까? 천만에! 속속들이 기억한다. 많이 성장하고 변해서 눈부신 존재가 되었다 할지라도 착각하진 말라. 그대들은 어린 시절 그 모습을 결코 지울 수 없다! 그래서 “야, 이 사람아! 기억하고말고!” 흥분한 척도 하지만 어떻게 나오나 싶어 “글쎄, 이게 누구지?” 능청을 떨 수도 있다.

이번 경우는 더구나 초등 1학년 담임으로 만났다. 사십 년도 더 지났지만 음성을 듣는 순간 그 모습, 성격, 에피소드 들을 떠올리며 “이 사람이 날 우스운 존재로 보네?” 하며 반가워했다.

반갑기만 한 건 아니었다. 녀석의 부모는 둘 다 학자였다. 녀석은 항상 단정했고 공부는 굳이 가르칠 것도 없었지만 과연 애들을 잘 보살핀다는 말을 듣고 싶어서 친구들과 다투지 않고 도와가며 지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뜻을 넌지시 표현하곤 했는데 그들은 그런 건 신경 쓰지 말라는 투였다. 그러면서 단 한 문제라도 틀린 시험지를 보면 아주 대단한 일로 여겨 못마땅해 했는데 전화를 받는 동안 그 일들도 바로 어제인 듯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그는 곧장 달려왔다. 어떻게 지내는지 물었더니 “여의도 증권가에 있다”는 사실만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그 정도만 알아두라는 듯했다. 그리고 ‘빈손’이었다! 이젠 하등 영향력도 미치지 못하는 주제에 뭘 바랄까마는 그래도 그렇지, 빈손이라니… 그나마 식사라도 하자는 뜻도 보여주지 않고 자꾸 무슨 말을 꺼내고 싶은 기미만 보였다. 그럼 내가 저녁을 사주는 수밖에. 그에겐 그렇지 않겠지만 나에겐 영원한 제자가 아닌가.

새삼스럽게 왜 찾아왔을까, 그게 궁금했는데 그러면 그렇지! 그는 식당에 들어서자마자 사십 년 만에 또 나를 걱정스럽게 했다. “결혼한 지 이십 년은 됐는데 아내는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남을 배려할 줄을 모른다는 불평을 쏟아냅니다” (아, 이 녀석! 여전하구나!)

딱하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에도 불가능했던 가르침이 이제 와서 무슨 수로 이루어지겠는가! 그렇다고 “자네는 아무래도 고치기 어려우니까 자네 아내를 데리고 오게” 할 수도 없지 않겠는가, 난감한 일이라는 표정으로 우두커니 앉아 있었지만, 그 시절 고심 끝에 그의 통지표(종합란)에 써넣은 내용을 생각하고 있었다. “○○이는 하루하루 친구들을 돕고 배려하는 생활을 배워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얘는 허구한 날 다툽니다. 남의 사정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양보할 줄도 모릅니다” 그렇게 쓸 수는 없었고 ‘TV는 사랑을 싣고’ 같은 프로그램에서 그런 표현이 우스개가 되거나 학생 본인이 낯을 붉히는 걸 볼 때마다 혹 난데없는 이유로 공개될지도 모르는 그 기록을 다행으로 여겼다. 직설적으로 쓰면, 아들이 시험문제 맞추는 게 유일한 목적이던 그 까칠한 부모가 좋아할 리 없었고 그들도 마음만 먹으면 내가 왜 그렇게 적었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서 생각해낸 것이, 나를 찾아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놀랍게도 그도 내가 그때 통지표에 적어준 그 문장의 내용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 이건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닌가!

그날 내가 마지못해 부탁한 건 서로 평등하게 지내기보다 좀 지면서 살라는 것, 그래봤자 상대방은 이쪽의 배려가 미흡하다고 여기기 쉽다는 것이었고 삶에 대한 학습은 결국 그런 것들이 아니겠느냐고도 했다.

지금 그들 부부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애초에 나는 그 1학년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했던 것일까. 그의 부모는 지체 높은 교육자로서 늘그막에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고 있을까. 교육이 어떤 목적을 지닌 것인지, 우리 교육에는 어떤 맹점이 있으며 그것은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지 깨달았을까?

사람은 변하기가 어렵다. 변해봤자 별수 없다. 그럴수록 애써야 하므로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모자란다는 말에는 그런 의미도 들어 있을 것이다. 교육은 지식의 전수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지금 우리 교육은 그런 면에서 큰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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