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정조시대의 정치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가 번암 채제공이다. 남인의 영수로서 정조의 탕평정치의 중심인물이었으며 성호 이익의 학통을 이은 경세치용 실학의 주도자이기도 하였다.

더불어 채제공은 조선 문화의 난숙기에 그 시대가 배출한 전형적인 성리학 정치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채제공에 대한 당대의 평가 역시 높았다. 다산 정약용은 채제공을 고금에 유례없는 하늘이 낸 인중호걸로 나라에 대한 충성심이 가득하고 모든 백성들과 소통하며 만물을 포용하는 도량이 있는 대 정치인으로 평가하였다.

채제공 역시 자신을 닦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채제공은 부친 채응일이 임종시에 남긴 매사에 선(善)을 다하란 말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래서 자신의 사랑채에 ‘매선당(每善堂)’이라는 편액을 걸고 자신을 수양하였다.

이처럼 매사에 노력하는 자세로 살았기 때문에 정조가 특별히 중용하고 그를 아버지처럼 대하였다. 채제공이 있었기에 금대 이기환, 다산 정약용 같은 남인계열의 실학자들이 배출될 수 있었고, 정국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채제공은 영조가 사도세자를 폐위시키고 죽이려 할 때 도승지로서 사도세자의 죽음을 반대하였던 의리(義理)의 인물로 정조로부터 평가받아 끝없는 인정을 받았다.

즉위 직후부터 개혁을 추진했던 정조는 중앙 정치에 참여하는 각 당파들의 입장 때문에 제대로 된 개혁을 단행하기 힘들었다. 특히 왕권(王權)이 강화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하는 노론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정조는 자신의 개혁 철학을 지지하고 이를 실무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정치가가 필요했다. 그가 바로 채제공이었던 것이다.

정조는 마침내 1788년(정조 12) 2월 11일 명덕산에 8년간 은거한 채제공을 특명으로 우의정에 임명하였다. 정조는 채제공의 우의정 임명교지 어필(御筆)을 용정(龍亭)에 싣고 북을 치고 피리를 부는 무리를 앞세우고 채제공의 집에 가서 교지를 전하게 하는 파격적인 대우를 하였다. 이는 국왕의 행차와 거의 마찬가지 모습이었다.

정조의 이와 같은 특별 명령에도 불구하고 교지를 전해야 할 좌직승지 조윤대와 홍인호가 정승을 임명한 전교를 되돌리고는 합문에 나아가 입대(入對)를 청하는 반기를 들었다. 도승지 심풍지, 우승지 윤행원, 동부승지 남학문 등 승정원의 모든 승지들이 채제공의 우의정 임명을 반대하는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상상이 안가는 일이다. 노론의 조직적 저항이 심각하게 드러난 것이다. 노론은 사도세자를 지지하는 채제공이 임명될 경우 자신들과 정쟁하게 될 것이기에 채제공에게 있지도 않은 죄를 만들어 덮어씌우려 하였다. 그 죄가 바로 사도세자의 죄를 비호하고 노론을 공격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조의 개혁보다는 자신들의 정치적 기득권 유지가 중요했다. 정조는 이런 생각을 가진 정치세력과는 함께 백을 위한 개혁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정조는 단호하게 이들 모두를 파직시키며 채제공의 우의정 임명을 강행하였다. 이와 더불어 정조는 채제공을 반대하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신하의 분의(分義)를 어기는 것이기에 임금의 말을 믿지 않는 율(律)로 논죄(論罪)하고 그런 소를 받아들인 승지도 같은 율로 논죄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정조는 나흘 뒤인 2월 15일 즉위 1년인 1777년(정조 1) 이덕사와 조재한이 사도세자의 죄가 없으니 당시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을 죄주라는 사건에 채제공이 관여되어 있지 않고, 홍국영과 긴밀한 관계가 아니며 특히 자신에게 욕을 한 일이 없었다며 그의 죄가 없음을 다시 한번 선언하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채제공은 다시 조정으로 돌아와 정조를 보좌할 수 있었고 삼상체제(三相體制)가 수립되었다. 각 당파의 영수급 지도자를 삼상에 임명하여 국정을 조절하고자 한 정조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국가를 위한 다양한 개혁이었고, 이들 노론, 소론, 남인의 지도자들은 국왕 정조와 함께 본격적인 개혁을 이루며 조선후기 정치와 문화의 부흥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제 21대 국회의원 총선도 마무리 되었다. 언론에 의하면 문재인 정부가 6월 개각을 한다고 한다. 이번 개각에는 진정 국가의 개혁을 할 수 있는 인물을 과감히 발탁해야 한다. 민주당만이 아니라 여러 정파의 입장을 고려하여 진짜 필요한 일꾼을 놓치지 말고 더 큰 미래를 위해 혁신적 사고와 추진력이 있는 인사들을 발탁하기 바란다. 그래야 대한민국이 미래로 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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