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우리의 윗사람 공경 풍조는 유별났다. 아랫사람들이 나이드신 분들께 ‘노인’ 이란 호칭대신 순수 우리말인 ‘어르신’이라는 표현을 쓴 것 만 봐도 그렇다. 두 호칭에는 큰 차이가 있다. 먼저, 노인을 가리키는 ‘늙을 로(老)’자의 갑골문을 보면, 머리(毛)를 산발하고 허리가 굽은 사람(人)이 지팡이(匕)를 짚고 있는 상형문자다. ‘늙은이’라는 의미가 담겨 부정적이다. 반면 그에 비해 ‘어르신’은,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거나, 아버지와 벗이 되는 어른이나 그 이상 되는 어른을 높여 이르는 말이어서 긍적적이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이같은 우리의 미덕이 사라지고 노인의 설 자리마저 사회의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이 일상화 돼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다반사로 일어나는 노인에 대한 정서적 학대다. 따라서 ‘혐로(嫌老)사회’라는 신조어가 확산 된지도 오래다.

최근 OECD가 2030년 우리의 고령인구 비율을 24.3%로 추정하고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이라 전망했다. 뿐만 아니라 2060년이 되면 고령인구가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40.1%에 이른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오랜 경로사회의 전통도 빛이 바래듯 노인을 비하하거나 혐오하는 표현들이 날이 갈수록 기승을 부리는 것이 노령사회를 맞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이다.

정서적 학대는 비난, 모욕, 위협 등의 언어 및 비언어적 행위로 노인에게 정서적으로 고통을 유발하는 것을 말한다. 노인의 의견을 무시하는 행동도 포함되며 주로 가정 내에서 발생한다.
 
중앙노인보호전문기관의 ‘노인학대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의 정서적 학대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014년 2169건을 시작으로 2330건, 2730건으로 해마다 늘어났다. 2017년에는 3064건으로 집계됐다. 전체 학대 중 42%에 해당하는 수치다.

그러나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신체적 학대다. 지난해 노인 학대 신고 건수는 1만2009건이고, 이 가운데 사법기관 등에 의해 노인학대로 판정받은 건수는 4280건으로 전년 대비 12.1% 증가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집계된 것만 이 정도일 뿐 은폐된 학대를 포함 실제로 일어난 사례는 훨씬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또 학대 가해자 10명 중 4명은 아들이었다. 학대 행위자 4637명 가운데 아들이 1729명(37.3%)으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배우자 952명(20.5%), 딸 475명(10.2%),순이다. 이 같은 수치로 볼 때 가해자 10명 중 7명이 가족이라는 얘기다. 발생 장소 역시 89%가 가정이라고 한다. 물질을 중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오죽하면  ‘세계 노인학대 인식의 날’ ‘노인학대 예방의 날’이라는 특별함을 부여하는 날까지 만들었을까.
 
그런가 하면 사회적 홀대 속에 빈곤까지 겹쳐 상처받은 노인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며 많은 노인들을 상대적 박탈감에 내몰고 있다.
 
우리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인 1위로 꼽힌다. 물론 한국 노인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31%로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일하는 노인 10명 중 4명은 수입이 최저임금을 밑돈다. 거기엔 ‘강요된 노동’이라는 ‘비극성’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일은 하고 있어도 노인 빈곤율은 45%로 선진국들의 3배 수준이다. 평생을 자녀교육·부모봉양에 헌신하고 이젠 빈손이다. 해서 당장 생계를 위해 일터로 가야 한다. 그나마 일자리의 절반 이상이 최저임금을 밑돈다. 노동시간은 평균보다 주 4.8시간 더 길다. 그렇게 근근이 세계 최장 71세까지 일한다. 그러다보니 극단적 선택을 하는 노인 자살률도 단연 1위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17년 빈곤통계연보에 따르면 2016년 인구 전체의 상대적 빈곤율은 가처분소득 기준 13.8%인데 비해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46.7%에 달했다.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인구 전체보다 3배 이상 높았다. 2016년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은 전년보다 2.0%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노인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겠다는 노인은 119만5000명이었지만 준비된 일자리는 51만 개에 불과했다. 이들의 재취업 지원은 청년 일자리 대책만큼이나 절실하다. 근로소득이 줄면 생계 유지가 어려워지고 소비 활동이 위축되면 국가 전체로도 큰 손실이다. 고용 연령을 65세에서 70세로 늘리는 방안논의 그래서 필요하다. 2050년이면 이런 노인 비율이 40%까지 올라간다. 조기 은퇴는 먼 옛날 얘기다. 먹여살릴 젊은층은 줄어들고, 세대간 일자리 갈등은 더 커질 것이다.

이러한 상황속에 경기도가 노인 복지를 위해 2020년 1월부터 ‘노인맞춤돌봄서비스’로 통합, 개편, 기존 4만여명보다 2만명 늘어난 6만여명의 노인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됐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도는 효율적인 시행을 위해 관련 예산을 기존 474억원에서 709억원으로 확대하는 한편 서비스관리자, 생활관리사 등 서비스 수행 인력도 1670여명에서 3890여명 수준으로 대폭 확대할 계획이며, 기존 41곳이었던 돌봄서비스 수행기관을 114곳으로 확대, 시.군 권역별로 운영되도록 함으로써 수행기관 1개소당 노인 300~400여명의 노인에 대한 ‘맞춤형 관리’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한다.

젊음을 바쳐 나라에 헌신하고 국가발전에 이바지한 ‘어르신’들을 공경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해야 할 마땅한 ‘도리’다. 또 이 사회로부터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도 하다. 아이가 자라 노인이 되듯 우리 삶도 그렇게 이어진다. 그래서 노인은 미래의 희망인 아이들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라 한다. 그 지혜의 등불을 꺼지지 않게 하는 것 또한 우리사회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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