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은 수원일보 창간 30주년이자 수원이 시 승격 70주년을 맞이한 해다. 7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수원은 인구 5만명에서 130만명의 광역시급 대도시로 성장하며 전통과 첨단이 어우러진 경기도 제1의 도시로 성장했다. 수원일보는 그 과정을 살피는 창간 30주년 특별 사진전 <수원을 기억하다>를 마련했다. 오래된 사진첩 속 수원의 과거를 돌아보면서 현재를 생각하고 미래를 꿈꿔본다.<편집자 주>

사진1. 1929년 일제강점기 수원 우시장 풍경(조선교육회 사진첩).(사진=수원박물관)
사진1. 1929년 일제강점기 수원 우시장 풍경(조선교육회 사진첩).(사진=수원박물관)
사진2. 1950년대 성안 북수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사진2. 1950년대 성안 북수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사진3.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영화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사진3. 전국 최대규모를 자랑하던 영화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사진4. 소들로 가득 찬 곡반정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사진4. 소들로 가득 찬 곡반정동 우시장.(사진=수원박물관)

수원하면 떠오르는 소갈비는 조선 시대 우시장과 관련이 있다. 조선 정조 때 수원화성을 지으면서 자재 운반용으로 소가 많이 유입됐다. 화성 완공 후 정조는 소를 농민에게 나눠주고 농사를 짓게 했다. 소는 점점 더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우시장이 생겼다.

수원 우시장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전국 3대 우시장으로 꼽혀왔다.(사진1) 현재 매향 중학교 수원천 건너편 인근인 팔달구 북수동 274번지 일대다. 수원과 인근의 화성, 오산, 용인, 평택은 물론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 각지의 소가 몰려들었다.(사진2) 한국전쟁 후 피난민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집이 생기고 길이 좁아지자 1960년대 영화동으로 이전했다. 1970년대엔 한해 2만 4,000마리의 소를 거래할 정도로 번성했다.(사진3) 이후 점점 쇠퇴해 1978년 곡반정동으로 옮겨 명맥을 이어나가다 1996년 9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사진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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